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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계명. 네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깨달아라

 

"<11월의 비>를 각색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실수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긴가 따져보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한석규의 복귀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후광을 기대하고 참여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3주 각색하는 동안은 정말이지 지옥 생활이었다.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 하지만 돌아온 건 힐난뿐이었다.

뜻대로 쓸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지만, 

결국, 영화사로부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는 말만 들었다.

그날 이후로는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정중히 거절한다."

- 이해영 작가 -

 

만능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애당초 버리는 것이 좋다.

이해준 작가와 함께 작업해온 이해영 작가는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는 

대개 궁합이 맞지 않는 아이템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하물며 처음 시나리오에 도전하는 이들이야 말해서 뭣하랴.

선배 작가가 예비 작가에게 던지는 충고 대부분은 

"모든 걸 다 잘할 순 없으니 먼저 자신의 취향에 대해 진단해보라."는 것이다.

이해영 작가는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쿨한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쿨한 척하는 것일 뿐이다. 쿨하지 않으면 쿨한 글을 쓸 수 없다.

누구나 인정옥(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작가)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건지, 영화판에서 놀고 싶은 건지, 

그냥 글을 쓰고 싶은 건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심산 작가의 독설과 "휴일도 없고, 월급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그런데도 올인할 수 있는가."라는 김희재 작가의 엄포를 넘어섰다면, 

"당신이 시나리오로 쓰고 싶은,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당신에게 답변은 무리일 것이다.

이쯤에서 선배 작가의 경험 하나를 들어보자.

로맨틱 코미디를 잘 쓰는 것으로 알려진 노혜영 작가는 <싱글즈>를 끝낸 뒤, 

사극을 써볼까? 스릴러를 써볼까? 하다가, "함부로 도전하지 마라. 잘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주위에서 들었다.

하지만 SF 멜로에 도전했고, 1년 동안 슬럼프에 빠졌다가 결국 포기했다.

"한계를 인정하니까 오히려 맘이 편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다시 자문하게 됐다."는 게 노 작가의 말.

박정우 감독은 "습작을 하다 보면 자신이 맞는 장르뿐 아니라 

대사를 잘 쓰는지, 캐릭터를 잘 만드는지, 구성이 좋은지 저절로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쯤에서 슈퍼맨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좋다.

다만, 잊지 말지어다. 자신의 감성 촉수 중 가장 발달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임무를.

 

 

 

2계명. 좋은 소재 발굴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지어다

 

"유명 연기자의 소개로 왕년의 조직폭력배를 만났다.

자기 얘기를 영화로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청을 전해 들어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싸움 이야기만 하는데 너무 지루했다.

얘기를 빨리 끝내려고 혹시 '사랑 같은 건 안 해봤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 재즈 피아니스트를 사랑했다고 하더라.

그는 조직의 명령으로 누군가를 살해했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하지만 몇 년 뒤 출옥했을 때 몇 년이고 기다리겠다던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를 찾아 미국이고 멕시코고 안 가본 데가 없으며 

아직도 총각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눈물을 비췄다.

순간, 난 속으로 외쳤다. '소재다!' 보스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 <약속>은 그렇게 시작됐다."

- 이만희 작가 -

 

맛난 음식은 좋은 재료에서부터, 좋은 재료는 

지극정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건 상식이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좋은 소재에 대한 갈망은 모든 작가의 욕망이다.

조폭으로부터 흥행 영화 <약속>의 불씨를 얻어낸 이만희 작가는 

"(소재를 찾으려는) 간절함이 없었다면 그저 눈물만 흘리고 뒤돌아 나왔을 것."이라고 말한다.

간절함은 의식 넘어 무의식의 세계에도 가닿는다.

작가들은 꿈속에서도 쉬지 못하고 소재를 찾아 헤맨다.

육상효 감독은 "고은 선생은 꿈에서도 시가 주르륵 보인다고 하는데 영화 소재도 마찬가지다.

새벽에 어떤 영상이 떠오르면 어서 빨리 일어나서 적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깨고 나면 기억이 안 난다."고 아쉬워한다.

고윤희 작가도 자는 동안 계시를 받을 일이 있을지 몰라서 

잠자리에서 항상 노트를 준비해두곤 한다.

 

하지만 이건 만의 하나에 대비하는 자세다. 예비 작가의 경우 잠을 설칠 필요까진 없다.

눈뜨고 있는 동안 일단 떠오르는 아이템은 무조건 적어두고 

아이템을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만큼 차고 넘치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라.

김희재 작가는 "시나리오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어 

마구잡이로 쓴다고 할지라도 창작의 열정을 막아선 안 된다."면서 

"일단 컴퓨터에 폴더를 100개쯤 만들어라.

제목만 떠올라도 인물 한 명만 떠올라도 각각의 폴더를 열고 집어넣어라.

그렇게 쌓이다 보면 나누어져 있던 폴더 안의 조각들이 

희한하게 서로 연결될 때가 있다."고 제안한다.

 

비현실적인 소재라고 미리 내팽개칠 필요는 없다.

이원재 작가가 5년 전 썼던 흡혈귀를 소재로 한 습작 <세일즈 맨>은 당시 

"터무니없다. 서양 귀신이라 별로 매력이 없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최근 충무로에는 흡혈귀 영화가 여러 편 준비되고 있다.

한 작가의 경우, 흥행작을 내놓은 다음 전에 써뒀던 습작까지 

모조리 뜨고 있다 하니 소재야말로 든든한 밑천이다.

쉬지 말고 캐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3계명. 처음 주제를 잊지 말지니라

 

"<실미도>의 그들은 마음만 먹었다면 탈출한 뒤 외국으로 가거나 어딘가로 숨을 수도 있었다.

왜 굳이 청와대로 향했을까. 그게 의문이었다. 내겐 정체성의 문제로 보였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뿌리와 정체성을 잃은 사람들이 무언가 헌신할 목적을 잃은 채 

생물학적 목숨만 부지하고 있다는 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로 주민등록번호를 쓰는 장면도 신파 효과를 내려는 게 아니라 

이 주제를 내세우는 클라이맥스로 생각했다."

- 김희재 -

 

기가 막힌 소재를 찾았으니 이제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속단은 금물이다. 소재만큼이나 중요한 게 주제다.

육상효 감독은 "상업영화에는 주제가 없다고들 

생각하는데 그러면 오히려 흥행도 안 된다."고 말한다.

시나리오의 주제는 영화가 본질에서 이야기하려는 바다.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과 이를 쫓는 형사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끝까지 들어가 보면 집념에 관한 이야기이고, 

<아마데우스>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삶을 보여주지만, 질투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주제는 그 영화가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작가의 속뜻이다.

"훌륭한 영화를 보면 모든 장면에 주제가 관통된다."고 육 감독은 설명한다.

 

김희재 작가야 주제를 이해해준 강우석 감독을 만난 덕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모든 경우가 그런 건 아니다.

장항준 감독은 <라이터를 켜라>를 만들던 당시에 결말을 놓고 속을 앓았다.

제작사는 봉구(김승우)가 영웅이 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기를 원했다.

봉구가 신문에도 나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열도 받아야 한다는 

제작사의 주장에 그는 당시 작가였던 박정우 감독과 함께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는 모습의 결말을 고집했고, 결국 이를 지켜냈다.

그에게 이 영화의 주제는 "뛰는 사람 따로, 

대접받는 사람 따로인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혜영 작가도 "주제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욕심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관객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이만희 작가의 이야기 또한 유념해야 한다.

"헤밍웨이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오히려 다 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거창한 주제의식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는 것이다."

주제란 마치 공기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시나리오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명심하라.

 

 

 

4계명. 플롯 짜기를 네 집 주춧돌 깔 듯이 하라

 

"방송사에서 무대감독을 하던 시절, 

영화의 구조를 익히기 위해 일 끝내고 돌아와서 매일 B급 영화 비디오를 3편씩 봤다.

영화의 기본, 공식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영화를 봐야 한다.

그것도 감정을 배제하고 뼈대를 추려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중에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B급 영화들을 

끊임없이 봤던 것은 무엇보다 이런 영화들이 만만하여 명성이나 

다른 요소에 압도당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장항준 -

 

소재와 주제가 확고해졌으니 하룻밤 안에라도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웬 시추에이션.

겨우겨우 20페이지 정도를 썼는데 더는 쓸 이야기가 없으니 말이다.

드디어 구조 또는 플롯에 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구조란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해 어떤 과정들을 거쳐 어떻게 끝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만희 작가에 따르면 "플롯(구조)은 말 안 듣는 개(관객)를 

고기 10점을 곳곳에 적절히 배치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구조는 골격이다. "일단 구조만 확고하다면 

장편 시나리오도 보름 안에 다 쓸 수 있다."고 김희재 작가는 말한다.

안정적이고 촘촘한 골격이 있다면 살 붙이기는 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조는 초보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구조는 수학이자 공학"이란 말이 시나리오계의 정설이겠나.

초보라면 본격적 구조화에 들어가기 전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 방법은 "베껴 쓰기"다.

심산 작가는 "일단 남의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써보라."고 말한다.

그 또한 첫 작품을 준비할 때, <대부>를 수없이 보고 옮겨 적었다.

"DVD를 볼 때 한 챕터만 보고 끈 다음에 이를 시나리오로 써보고, 

숙련되면 한두 챕터만 보고 다음 챕터를 이어서 써보"는 이원재 작가의 방법이나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를 본 뒤 다시 시나리오를 보거나 

그 역으로 영화-시나리오-영화 순서로 보는" 김희재 작가의 지침이나 모두 같은 맥락이다.

전범이 될 만한 영화를 베끼다 보면 이야기가 시작돼서 

어디서 상승했다가 어디서 내려오는지 흐름이 잡힌다는 것.

이 단계까지 충실히 극복했다면, 구조화 방법론을 할리우드 스타일의 "3장 구조"를 택하든 

자신만의 "공법"을 만들든, 이제 장편에 걸맞은 호흡법을 갖추게 된 건 확실하다.

 

 

 

5계명. 네 캐릭터를 숨 쉬게 할지니라

 

"동료와 함께 공동창작을 하던 시절, 

우리는 맘대로 정우성과 전지현의 이미지를 빌려왔다.

두 배우의 사진으로 작업실 벽을 도배했고, 

그들이 출연한 전작은 물론 토크쇼까지 챙겨봤다.

그들의 말투와 행동과 표정을 모아 영양부족 상태의 우리 캐릭터에게 주었다.

<영어완전정복>에서는 이나영을 내정해놓고 참조했다.

<네 멋대로 해라>가 방영됐던 때인데 9급 공무원 나영주와 이나영이 어울려 보였다.

나중에는 정말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나영의 엉뚱함과 

눈이 너무 커서 개구리 같다는 그녀의 농담까지 대사에 녹였다."

- 노혜영 -

 

캐릭터란 주제를 이끌고 골고다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가상의 예수다.

그러나 캐릭터를 빚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다.

캐릭터는 무엇보다 우리처럼 살아 숨 쉬는 존재여야 한다.

"캐릭터가 걷고, 화내고, 먹는 모습을 단번에 떠올릴 수 없다면 시나리오가 밍숭맹숭해진다."는 

노혜영 작가는 캐릭터와 친해지기 위해서 그 혹은 그녀와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를 모델로 삼았다.

육상효 감독은 "얄팍한 인간이나 구조의 목적에만 맞는 인물을 만들어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초보자들의 경우, 캐릭터를 "특정 기능을 위한 로봇"으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뻣뻣한 캐릭터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방법은 또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을 본떠 만드는 것이다.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을, 엄마를, 친구를, 옆집 아저씨를 잠시 빌려와서 

그들이 이야기하게 하면 된다."(고윤희 작가)

인물의 전사(前史)와 이름은 물론이고, 혈액형이나 별자리까지 신중하게 붙인다는 김희재 작가는 

"신봉승 작가는 인물의 생시를 정해서 유명한 작명소에 찾아가기도 했다."는 에피소드까지 전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산 작가는 캐릭터를 빚을 때 

"그냥 착하기만 하다고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게 아니고 나쁜 놈이라고 해서 

끝까지 나쁘기만 해선 안 된다."고 또 다른 숙제를 내놓는다.

박정우 감독도 "주요 캐릭터가 방방 뛰는 경우 보조 캐릭터까지 같이 뛰면 곤란하다.

보조 캐릭터는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되 함축적인 연상을 

가능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작가에게 캐릭터는 자식이다.

 

 

 

6계명. 취재를 게을리하지 말되, 지나침이 없도록 할지니라

 

"캐릭터는 앉아서 부화하는 게 아니다.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서만 캐릭터의 모양새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작 <아이언 팜>은 미국에 거주할 때 내게 위안받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털어놓는 한 남자를 원치 않게 취재하면서, 

<달마야 서울가자> 또한 희한한 스님들이 실제로 있다는 

일화를 듣게 되면서 시작했고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코미디를 쓰려고 하는데 

단속반이며 노동자, 자원봉사자까지 다 만나볼 생각이다.

어떤 경우 말투, 이름, 성격까지 그대로 모방할 생각도 갖고 있다.

지금 내게는 세 줄짜리 이야기뿐이지만 취재를 통해 곧 단단한 눈덩이로 불어날 것이다."

- 육상효 감독 -

 

취재는 기자만 하는 게 아니다.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은 경찰서에서 취재하다 노숙자로 오해받았다.

잘 알려졌듯이, <범죄의 재구성>의 별난 선수들은 

최동훈 감독이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인터뷰해서 살을 붙인 인물들이다.

(참고로 <범죄의 재구성> 시나리오 제작기를 써서 보낸 뒤, 

최 감독은 리얼 스토리가 공개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며 

<씨네21>에 특정 에피소드를 빼 달라고까지 했다.)

"발로 뛰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라는 속설은 시나리오에도 해당한다.

특히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인물, 공간, 사건 등을 다뤄야 한다면 

취재만큼 작가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없다.

박정우 작가는 "여행을 해보지 않은 이가 로드무비를 쓴다면 결국 휴게소를 들락거리며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도는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이다.

이해영 작가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실존 인물을 시나리오로 써보겠다던 한 후배가 술자리에 몇 번 나가더니 

"유년 시절도 다뤄야 할 것 같고 아무래도 2시간짜리 영화로 

다루기엔 버거울 것 같다."며 포기하더라는 것이다.

이 작가는 "시나리오는 자료집이 아니다. 취합해서 옥석을 가리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애초 하려고 했던 이야기의 중심이 흐려지고 캐릭터마저 뭉개진다."고 말한다.

고윤희 작가도 취재의 덫에 대해 경고한다.

"길가의 현수막 문구에서도 정보를 얻는 편이지만, 

취재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작가는 설명적이 된다.

일수쟁이를 취재했다 치면 그걸 어떻게든 넣고 싶어 하는데 

그러다 보면 불필요한 장면이 엄청나게 늘어난다."고 덧붙인다.

 

 

 

7계명. 대사 쓰기를 너 말하듯 하라

 

"<파이란>에는 경수(공형진)가 강재(최민식)에게 

죽은 파이란의 사진을 보여주며 '형 얘 예쁘지?'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강재의 답은 '참 안됐다.' 뭐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강재가 교양 있는 인간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이렇게 고쳤다.

'이 년이 그때 그 년이냐! 중국 냄비가 예뻐 봤자지.'

내가 각색을 맡기 전 이 시나리오는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웠을지언정, 

강재라는 진짜 인간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대사를 집중적으로 손보니 해결이 됐다."

- 김해곤 -

 

캐릭터를 결정하고 취재까지 마쳤다면 대사와 지문을 통해 인물의 모습을 구체화하게 된다.

대사를 쓸 때 초보자가 범하기 쉬운 가장 큰 오류는 

대사를 통해 모든 상황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육상효 감독은 "초심자는 시나리오를 쓰는 게 대사를 쓰는 것이라 착각한다.

'나 실연당했어.'라는 대사보다 구겨진 장미, 퀭한 얼굴을 

보여주는 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한 씬을 만들 때 아예 대사 없이 만들어보고 

정 안 되는 대목에 대사를 넣는 훈련을 해보라."고 권한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이 "아이, 왜 그러시어요."라거나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아따, 왜 이럽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 대사는 캐릭터나 캐릭터의 관계를 드러낸다.

대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듯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다.

 

"입에 붙지 않는 한국영화의 문어체 대사를 보면서 

내가 쓰면 저렇게는 절대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는 

박정우 감독은 "혼자 줄줄 구시렁거리면서 쓴다."고 말한다.

덕분에 그는 데뷔 때부터 "대사빨" 하나는 대단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자신이 있다고 대사가 너무 길어지면 곤란하다.

고윤희 작가는 "그건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좋아.", "싫어.", "먹어."처럼 

짧은 대사만으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전한다.

대사의 맛 또한 중요하다. 장항준 감독은 초보 시절 속담집이나 격언집을 챙겨보며 영감을 얻곤 했다.

"속담집은 풍부하고 질퍽한 표현을 알게 해주며, 

격언집은 말이란 게 짧고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얼음이 깨지기 전에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알 수 없다.'는 에스키모 속담은 정말 훌륭하지 않나."

 

 

 

8계명. 풍경 사진 찍듯 글 쓰라, 무릇 영화는 눈으로 보는 것이니

 

"<비트>는 정우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팔을 펼치는 이미지에서 시작됐다 할 수 있다.

<태양은 없다>는 정우성의 얼굴이 못 알아보게 얻어터져서 

화면에 꽝 떨어지는 이미지가 시작이었다.

기타노 다케시는 어느 인터뷰에서 '어떤 남자가 머리에 총을 대고 있는 장면을 먼저 생각하고, 

얼마 있다가 해변에서 어른들이 스모 하는 장면을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6∼7개의 그림이 모이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 심산 -

 

작가는, 시나리오는 문자로 이뤄져 있지만, 그 본질은 영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캐릭터와 스토리를 생각할 때 영상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만희 작가는 이를 "감성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남자가 여자에게 이야기한다고 치자.

'나는 너에 비해 보잘것없는 존재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네가 이조백자라면 나는 거기 붙어 있는 김칫국물 같은 거다.'라고 

말하는 게 시각적으로 바로 다가온다.

결국, 다양한 영상적 재료를 일상에서 보고 비축해두는 게 작가의 출발점이다."

 

이런 훈련이 잘되면 "문자로 시나리오를 쓰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의 영상을 글로 옮긴다.(김희재)는 개념이 성립된다."

<공공의 적2>에서 아끼던 수사관이 죽은 뒤 강철중이 어딘가로 걸어오는 장면이 있다.

그 부분을 썼는데, 후배가 묻더라. "사운드는 왜 넣으셨어요?"

그러고 보니까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 들려온다."는 대목이 있더라.

"머릿속 장면을 글로 적다 보니 그런 대목까지 무의식적으로 적힌 모양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영상적으로 사고한다는 말은 듣기엔 쉬워도 실제 행하기란 녹록지 않다.

고윤희 작가처럼 "입봉"한 경우에도 이른바 "비주얼 스토리텔링"은 난제다.

"대개 난 어떤 장면을 써야겠다고 하면 대사부터 떠오른다.

그래서 쓰고 싶은 말을 쓰면 노트 한 권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훈련 방식은 그냥 영화를 많이 보는 거다.

<화양연화>에서 장만옥의 의상은 그 자체로 대사가 아닌가."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려면 막연한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감이야말로 시각화의 기초다.

박정우 감독은 "작가가 직접 배경이 되는 공간에 가보는 게 중요하다.

그게 안 된다면 인터넷에 들어가 비슷한 공간의 사진이라도 띄워놓아야 잘 써진다."고 말한다.

 

 

 

9계명. 중도에 포기하지 말지니라

 

"작가로 데뷔하기 전 시나리오 한 편을 썼다.

지금으로 치면 <몽정기>와 비슷한 내용인데, 

결국, 영화화하지 못했지만, 한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자고 제의했다.

울릉도에 가 3개월 동안 권당 350쪽이 되는 두 권짜리 소설을 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나리오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요령이 생기더라. 글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일단 하나를 끝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고, 많이 써야 실력이 느는 것 같다."

- 박정우 -

 

8계명까지를 순조롭게 돌파했다 해도 피할 수 없는 수렁이 있다.

어떤 대목에서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그것이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캐릭터 사이의 갈등을 뽑아내야 한다거나, 근사한 상황을 만들어야 하거나, 

적절한 대사가 안 써지거나, 아니면 그 모든 것의 복합이던가.

 

"프로 작가가 됐지만, 초고를 쓸 때 5∼6 대목이 막히는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란 

이해영 작가의 말처럼 이는 글 쓰는 이의 숙명 같은 것이다.

육상효 감독은 "일단 어딘가에서 막히더라도 웬만하면 포기하지 마라.

특히 시나리오를 처음 쓰는 사람이라면 결국, 쓰레기가 된다 

하더라도 일단 완성될 때까지 밀어붙여 봐라.

한 편의 시나리오를 끝내는 경험 자체가 그 이전 단계에선 

느낄 수 없는 많은 것을 준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쓰는 이의 의지다.

이만희 작가는 "풀어내려는 고민으로 꽉 차 있는 한 언젠가는 풀린다는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돌파구를 찾으려는 고민이 꽉 차 있기만 하다면, 언젠가는 답이 나온다는 얘기다.

엉뚱하게도 꿈이 해결해줄 수도 있다.

"<약속>을 쓸 때 공상두(박신양)가 희주(전도연)에게 

뭔가 예시적인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안 나오더라.

어느 날 잠을 자는데 내가 강화도행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아서 초행길인데도 

'다음엔 저수지', '다음엔 사당', 이렇게 알아맞히고 있더라.

깨어나자마자 이걸 상두의 시점으로 시나리오에 옮겨 썼고, 

'너와 사랑의 결말이 이렇게 될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는 대사로 마무리 지었다."

이만희 작가의 말을 뒤집어보면 해답이 안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이 덜 찼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숨을 건다는 자세로 치열하게 고민을 거듭해서."(김해곤)

 

첫 시나리오를 완성해낸다면 이제 당신은 시나리오 작가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셈이다.

 

 

 

10계명. 귀에 쓴 말 듣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연애의 목적> 이후 <어깨너머 연인>의 각색을 

맡았는데 초고를 만들기까지 무려 6개월이 걸렸다.

혼자 예술 한 거지. 완벽하게 해서 바로 영화화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각색이라서 그런지 내 것을 좀 더 넣고 싶다는 욕심이 컸던 것 같다.

결과물을 본 감독님이 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원작과 동떨어져 있다고 해서 결국 새로 써야 했다.

그때 아직도 미련한 초짜구나 싶었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했으니까."

- 고윤희 작가 -

 

초고를 손에 든 순간에야 본격적인 계주가 시작된다.

트랙을 몇 바퀴 돌아야 스크린에 당도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장애물은 곳곳에 있다.

고윤희 작가는 <연애의 목적>을 처음 시나리오 학원에 내놓았을 때 

"변태 아냐? 인물도 제정신이 아니고, 쓴 사람도 미쳤다."는 악의적인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걸 참아내지 못하면 시나리오는 무덤으로 직행이다.

 

박정우 작가는 "데뷔할 때 감독하고 매번 싸웠다.

심지어 못하겠다면서 영화 그만두겠다고 나간 적도 있다."고 말한다.

이원재 작가 또한 "초고는 마음으로 쓰고 수정은 머리로 하라."는 금언을 알면서도, 

"많게는 15번, 16번을 고쳐 써야 한다면 초고는 불과 

시나리오 작업 중 10분의 1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첫 작품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노혜영 작가 또한 <싱글즈>의 초고를 영화사에 들이밀었을 때 

"이걸로 영화 할 수 있겠어. 엎어야 하는 것 아냐."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도 작가들은 상처란 영예를 얻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긍정한다.

박정우 작가는 "시나리오는 집에 쌓아두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다.

초고를 빨리 쓰는 건 더 많은 모니터와 수정을 위해서다."라면서 비판을 달게 받으라고 말한다.

친한 이들에게만 모니터를 요구한다면 하나 마나 한 일이라는 게 그의 덧말.

 

육상효 작가도 "썼으면 감추지 마라. 남들의 판단에 맡겨라.

상처를 견디지 못하면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모니터는 또 다른 애정의 표현일지 모른다.

"습작 때부터 모니터해줄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팀을 꾸려 작업을 하다 보니 

어떤 비난도 당해낼 자신이 생기더라."고 노혜영 작가는 말한다.

당신의 시나리오에 대한 세상의 수많은 화살, 피할 수 없다면 

당신의 스크린 입성을 축하하는 축포라고 여겨라.

아니, 진실로 박수세례일 것이다.

 

 

 

[출처]

sb.hihome.kr/scenario/info/spe1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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