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악한 일에 쓰이는 도구인가? 좋은 일에 쓰이는 도구인가?
게임은 좋게 봐줘 봤자 하찮은 오락인가? 나쁘게 봐줘 봤자 하찮은 오락인가?
게임은 좋게 봐줘 봤자 하찮은 오락이라 인생에 쓸모가 없을까?
나쁘게 봐서 하찮은 오락이라 인생에 영향을 주지 못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중요한 이유는 이 업계에 종사하는
우리가 밤에 발 뻗고 잘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일하는 우리를 보는 가족, 친지, 공동체를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게임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내가 "디자이너 병"이라고 부르는 병을 앓고 있다.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의 패턴에 극도로 민감하다.
게임의 패턴을 즉시 꿰어버리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의 허구를 넘어서 내부를 매우 쉽게 꿰뚫어 본다.
과거와 현재 게임에 대한 백과사전적 기억을 구성하고,
이 기억을 이론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
하지만 게임 디자이너는 보통 새로운 게임을 만들지 못한다.
그들의 경험이 가정의 근거가 되어 그들을 과거에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두뇌는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한 해법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한다.
더 많은 해법을 넣어둘수록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 결과, 비슷한 게임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오늘날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게임 디자이너는
영감을 얻기 위해 다른 게임에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
창의력은 이종 교배에서 나오지, 같은 아이디어를 반복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 자체가 취미이므로 좁은 반향실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꼴이 되었다.
게임을 다른 인간의 성과물과 같은 수준에 두고,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 바깥으로 나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찾도록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게임은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장난감"에 머물지 않는다.
"게임"의 정의는 "장난감", "스포츠", "취미" 등의 의미도 포함한다.
우리는 게임을 더욱 넓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이 가진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많이 놓치게 될 것이다.
좋은 게임이란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그만두기 전에 가르쳐야 할 것을 모두 가르쳐 주는 것"이다.
결국, 게임은 선생님이다. 재미는 그저 학습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게임은 게임이 묘사한 현실의 작동 방식을 가르쳐주고, 자신을 이해하는 법,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법, 상상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잘 만들어진 게임은 그저 지시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게임은 플레이어가 주어진 도구를 사용해 반응을 창조해내도록 만든다.
게임(비디오 게임과 전통적 게임 모두)은 너무나 다층적이어서 연구하기 까다롭다.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도 너무나 다양하다.
게임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과정에 관련된 요소를 살펴보면 인지심리학,
컴퓨터 과학, 환경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 나열하자면 한이 없다.
게임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모든 요소의 관점에서 게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게임에서 가장 큰 제약은 뇌를 연습시키는 게임의 본성 바로 그 자체다.
뇌를 연습하도록 만드는 데 실패한 게임은 지루하다.
우리는 더 많은 패턴을 학습할수록 더 참신한 게임에서 매력을 느낀다.
게임의 재미는 게임을 숙달하는 것에서 온다.
숙달은 이해로부터 온다.
퍼즐을 푸는 행위가 게임을 재미있게 만든다.
다시 말해, 게임에서는 학습이야말로 마약이다.
게임에서 새로운 퍼즐 요소를 끌어내는 데 실패하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게임은 부족과 과잉, 지나친 질서와 과도한 무질서,
침묵과 잡음이라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즉, 플레이어가 게임을 끝내기 전에 지루해지기 쉽다는 뜻이다.
사람은 패턴을 매칭하거나, 패턴에 어울리지 않는 잡음이나
침묵을 무시하는 데 정말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게임은 진화하고 있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빠르게 변하지는 않는다.
비록 일부 게임이 전혀 다른 스킬을 포함하고 있지만,
대부분 게임은 여전히 거의 같은 활동을 공통 핵심 요소로 가지고 있다.
자원 배분, 권력 투영, 영지 관리 같은 활동 말이다.
게임은 "복합적인" 매체이며, 게임 시스템과 더불어 이야기, 그림, 음악을 모두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게임은 표현 범위가 엄청나게 넓고,
아직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잠재 역량을 담고 있다.
대부분 사람은 이야기 때문에 게임 시스템을 플레이하지는 않는다.
시스템을 둘러싼 이야기는 대개 뇌를 위한 양념이다.
이야기는 게임에 흥미로운 명암을 더하지만, 게임의 핵심을 바꾸지는 않는다.
플레이어에게 잘하고 있다는 정적 강화를 주는 방법이자
보상으로 이야기 요소를 제거하는 예도 많다.
작가라는 내 배경을 생각하면 정말 화나는 일이다.
이야기는 이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다.
나는 재미를 학습 과정에서 패턴을 습득했을 때 뇌가 주는 피드백이라고 정의한다.
재미는 본질적으로 연습과 학습에 관한 것이지, 숙련도를 사용하는 데서 느끼는 게 아니다.
사실 재미는 행동하기 전부터 느낄 수도 있다.
해결책을 예상해보는 것은 실제로 적용해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발전하는 존재다. 우리는 삶이 편안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게으르다. 우리는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무언가를 계속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지루함을 싫어하지만, 사실은 예측 가능성을 갈망한다.
우리는 지루함을 싫어하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것을 허용하지만,
그 허용범위가 예측 가능한 선을 넘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함은 새로 배울 만한 패턴이며, 그렇기에 재미있다.
우리는 즐거움(그리고 학습 용도로) 때문에 예측 불가능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예측 불가능함은 그 위험이 너무나도 크다.
그래서 애초에 예측 불가능함과 학습의 경험을 하나로 묶어
위험이 없는 시공간에 몰아넣는 "게임"이 필요했다.
게임은 우리가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또 그렇게 하려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달리 말하면 게임의 운명은 지루해져서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두뇌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재미라는 과정의 종착역은 반복이기 때문이다.
게임 디자이너를 위한 교훈은 간단하다.
게임은 지루해지고, 자동화, 치팅, 빈틈을 활용당할 운명을 맞는다.
디자이너의 유일한 책무는 게임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고,
그것을 가르치도록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게임이 가르치는 한 가지, 즉 주제, 핵심, 게임의 심장은
많은 시스템이 필요할 수도, 혹은 조금만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의 모든 시스템은 이 배움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는 모든 시스템에서 영원불멸하다.
우리가 계속 게임을 하찮은 엔터테인먼트로 여긴다면
나중에는 게임을 음란물처럼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외설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회적 가치를 보완하는지 아닌지다.
좋은 게임은 사회적 규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모든 매체의 창작자에게는 자신의 창작물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가 있다.
오늘날 게임은 대체로 폭력적이다.
게임은 힘에 의존한다. 게임은 지배에 의존한다.
이것이 게임의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다.
모든 엔터테인먼트의 기본 구성물을 보면 성과 폭력이 주를 이룬다.
업계에 어른스러움이 부족함을 한탄하는 것도 좋지만, 나무를 보느라 숲을 놓칠 필요는 없다.
과도한 성과 폭력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성과 폭력의 천박한 표현이다.
게임 메커니즘으로 사회적 선이나 명예 같은 개념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게임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게임이 깨어있지 않다.
게임은 다른 모든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예술로서의 역량도 가지고 있다. 인간 심리를 그려낼 수도 있다. 교육 도구이기도 하다.
사회를 계몽하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며, 감정을 끌어내기도 한다.
이제 게임이 단지 영토 관리, 조준, 타이밍 및 기타 나머지에 대한
패턴을 가르치는 데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 주제들은 더는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도전이 아니다.
게임과 게임 디자이너가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류의 노력이라는 맥락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뇌가 실제로
어떡해 작동하는지를 고려한다면 게임을 폄하할 수는 없다.
게임은 하찮고 유치한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매체의 창작자도 먹고사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꿀 만한 물건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게임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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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울티마 온라인], [스타워즈 갤럭시] 같은 대규모 온라인 게임의 리드 디자이너와
디렉터를 담당했던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기획자) 라프 코스터(RAPH KOSTER)라는 분이 쓴
"게임"과 "재미"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과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원래 이 책은 2005년도에 처음 출간되었으나 그동안 시대가
많이 흘렀기에 내용을 좀 더 보강하여 2017년인 작년에 개정판으로 나왔던 책이다.
과거 2005년도에 출판된 버전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상하게도 책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질 않았었다.
번역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내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내용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책에 대해서 잊고 있다가 개정판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이번에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었다.
과거 버전보다는 무난하게 읽기는 했는데 그만큼 불편한 점도 있었던 책이다.
먼저 책에 주석(註釋)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데 그 주석에 관한 내용이 모두 책 끝 부분에 실려있다.
그래서 주석을 확인하려면 책을 읽다가 책 끝 부분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데 불편함이 많이 생길 수가 있다.
책 페이지 오른쪽에는 페이지마다 삽화가 삽입되어 있는데 차라리 삽화를 빼던지,
아니면 삽화의 크기를 줄여서라도 주석에 관한 내용을 책 오른쪽 페이지나
책 페이지 하단에 넣어줬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독자를 별로 배려하지 않은 책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 책은 책을 읽는 독자의 지식수준에 따라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느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책이다.
"게임"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 있어 심리학, 과학, 음악, 스포츠, 영화 등
다양한 타 분야들을 빌어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읽으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주석이 있다고 해도 주석도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 종종 있는지라.
그리고 책에 실린 주석만으로도 설명이 부족하여 추가로 참고하라며
사이트 링크 주소가 적힌 주석들이 있는데 이 링크 주소 대부분이
영문(!)으로 돼 있는 사이트에 있는 영문 글이다.;;
그러므로 영어를 못하면.;;;
(번역기를 돌려 억지로라도 읽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유익하게는 읽었으나 그래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에는 많이 어려웠던 책이 되었다.
그래서 "게임"에 대해 문외한 사람보다는 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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