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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
저로 하여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성업(聖業)을 완수하게 해 주십시오.

 

-백범일지(白凡逸志) 中-

 

 

 

안녕하세요.

서울시 용산구 백범로 281-9에 위치한 "이봉창 역사울림관"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 계기는 네이버 지도를 살펴보다가 효창공원이라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효창공원 근처에 역사울림관이 보이길래 호기심 충족과 기분전환도 할 겸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봉창 역사울림관 방문 후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도 방문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이봉창(李奉昌)"이라는 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아래 간략하게 소개글을 남깁니다.

 

이봉창은 일제강점기 일왕투탄의거와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901년 8월 10일에 태어나 1932년 10월 10일에 사망했다.

조선인 차별에 항일의식을 갖고 1924년 자택에서 항일단체인 금정청년회를 조직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하며 전전하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고 1930년 상해로 갔다.

김구가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킨 뒤 그의 소신을 수용하여 

일본천황폭살계획(사쿠라다몬 의거 櫻田門義擧)을 추진했다.

1932년 동경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던 천황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비공개 재판에서 전격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아래는 이봉창 역사울림관 소개글입니다.

 

이봉창 역사울림관은 용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봉창 의사의 독립투쟁의 역사와 

애국정신을 선양하고자 이봉창 의사 옛 집터 인근에 건립된 기념관이다.

이봉창 의사의 흉상과 함께 한인애국단 선언문이 전시되어 있다.

용산 원효로 2가에서 태어나 효창동에서 자라며 용산역 역부로 근무하고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의 이야기와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다.

1932년 1월 18일 의거일 그날의 풍경을 VR로 관람할 수 있고, 

한인애국단 단원 AR체험, 역사울림말 티켓, 스탬프 체험 등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이봉창 역사울림관 인근에 위치한 효창공원, 백범김구 선생 묘역, 삼의사 묘역, 

임시정부요인 묘역과 의열사와 함께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둘러볼 수 있다.

- 한국관광공사 -

 

 

이번 방문을 통해 이봉창이라는 독립운동가를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역사울림관의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이라 

오랜 시간 걷는 등의 부담 없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규모가 작은 만큼 별다른 편의시설이 없습니다.
내부에 정수기조차 없기에 이런 점들을 감안하고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아래부터는 사진입니다.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leebongchang0108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 네이버 블로그

이봉창 의사 역사 울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봉창 의사의 모든 역사와 함께, 울림이 있는 일상을 만나보세요! 문의 용산구청 문화진흥과 02) 2199-7240 leebongchang0108@naver.com 서울특별시 용산

blog.naver.com

 

 

 

 

 

 

 

▲ 이봉창 역사울림관 입구 앞에서 찍은 사진.

 

 

 

 

 

 

 

▲ 이봉창 역사울림관 건물의 모습.

 

 

 

▲ 울림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있었던 역사울림말 발권기의 모습.
시간 관계상 발권기는 사용해보지 못했는데 정보를 찾아보니 몇 가지 설문조사를 하고 
그 답변을 분석해 내장된 12인의 독립운동가 중에서 1명을 선정해 카드를 출력해 주는 장비라고 한다.
출력한 카드는 역사울림관에 걸어두거나 기념품으로 소장할 수 있다고 함.
발권기 맞은편에는 울림관 관리사무실이 있었다.

 

 

 

▲ 왼쪽에 걸려있는 종이들이 역사울림말 발권기에서 출력된 카드들이라고 한다.

 

 

 

▲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건립취지 안내판.

 

 

 

 

 

 

 

 

▲ 터치스크린을 통해 이봉창 의사가 살았던 용산구 효창동의 대략적인 역사를 알 수 있다.

 

 

 

 

 

▲ 이봉창 역사울림관 내부의 모습.

 

 

 

 

▲ 이봉창 의사의 흉상.

 

 

 

 

 

 

 

 

▲ 이봉창 의사의 탄생부터 독립 운동을 하게 된 계기 등을 대략적으로 소개주는 안내판의 모습.

 

 

 

▲ 좌측 위부터 이봉창 의사의 사형선고 신문 기사(부산일보)와 독립의연금 영수증, 

자신의 행적을 설명한 진술서인 상신서의 모습.

 

 

 

▲ 좌측부터 한인애국단 선서문과 이봉창 의사의 신상이 적힌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의 모습.

 

 

 

▲ 의거자금 요청 친필편지의 모습.

편지의 모습을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이 과연 이 글씨를 읽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인애국관 제1호 단원이 된 이봉창 의사의 모습과

1호 단원을 간접 체험(?) 해볼 수 있는 사진 촬영 기계의 모습.

이봉창 의사의 몸에 자신의 얼굴이 합성되어 촬영된다.

 

 

 

 

 

 

▲ 1932년 1월 8일 일본 제국 도쿄 경시청에서 이봉창 의사가 

일왕 쇼와 덴노(히로히토 迪宮裕仁)에게 폭탄을 투척한, 

일명 "이봉창 의거(사쿠라다몬 의거 櫻田門義擧)" 사건 당시를 체험해 볼 수 있는 VR 체험관의 모습.
VR기계를 착용하니 사건을 3D로 재현한 화면을 볼 수 있었는데 

고퀄리티는 아니라서 조금은 아쉬웠다.

 

 

 

 

 

 

 

▲ 의거 직후 보도 기사, 사형 집행 기사, 유해 안장 기사 등 신문 기사를 꽂으면 

창문을 통해 기사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 이봉창 의사의 서거와 유해 안치, 그 이후의 이야기를 소개한 안내판의 모습.

 

 

 

▲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중.

 

 

 

 

 

 

 

▲ 역사울림관 마당에는 이봉창 의사와 백범 김구 선생이 

처음 만나 나눈 대화를 재구성하여 만든 벤치 포토존이 있었다.
포토존 뒤 툇마루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성우가 연기한 음성을 들어볼 수 있다.
벤치 가운데 있는 것은 소위 도시락 폭탄이라고 하는데 벤치에는 아래와 같이 소개글이 새겨져 있었다. 

"김구 선생은 폭탄 2개를 입수하여 홍성실 여사에게 폭탄 운반 지령을 내린다.

유모차 안에는 자신의 어린 딸(한순옥 여사)과 도시락처럼 감싼 폭탄이 있었다.

폭탄을 전달받은 김구 선생은 1931년 12월 13일 이봉창 의사에게 자금을 전달하고, 

이봉창 의사는 폭탄을 들고 사진 촬영을 했다.

이틀 뒤인 12월 15일 김구 선생과의 식사자리에서 신문지에 싼 폭탄 2개를 전달받았다."

 

 

 

▲ 역사울림관을 떠나기 전 찍은 마지막 사진.

 

 

 

이상으로 이봉창 역사울림관 방문 편을 마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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