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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무문(神武門).

신무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맞은편에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다.

 

 

 

- 신무문(神武門) -

신무문(神武門)은 경복궁은 북문으로, 

"신무"는 "뛰어난 무용(武勇)", "신령스러운 현무(玄武)"라는 뜻한다.

신무문은 1433년(세종 15)에 지어졌다가 1475년(성종 6) 문의 이름을 신무문이라 붙였다.

신무문 쪽은 인적이 드물었으나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해 놓은 회맹단이 있어 

왕이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이 있는 회맹제에 참석할 때 이 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또 영조 대에는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을 참배하기 위하여 

경복궁 터를 길로 삼았는데, 이때 신무문을 자주 이용하였다고 한다.

 

 

 

 

 

▲ 다시 경복궁 안으로 들어온 후 찍은 사진.

 

 

 

▲ 예성문(禮成門).

계조당(繼照堂)처럼 상시 자유 관람이 가능한 곳은 아니며 

특별 전시회 등이 있을 때만 관람할 수 있다.

 

 

 

- 예성문(禮成門) -

"예성(禮成)"은 "의식(儀式)을 마무리함"의 뜻이다.
태원전 동남쪽 "장고(醬庫)"로 들어가는 문이다. 1867(고종 4)년에 만들었다.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들어졌으나, 일제 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2005년 태원전 복원 공사와 함께 복원했다.

 

 

- 장고(醬庫) -

경복궁 장고(醬庫)는 궁궐 내에서 사용되던 간장·된장 · 고추장 등을 항아리에 보관하던 장소로, 

주로 궁중 연회나 제례, 수라상에 쓰이던 장(醬)을 관리 보관하던 곳이었다.

이곳은 "장꼬마마(醬庫媽媽)"라 불리던 상궁이 직접 관리한 곳으로, 

장꼬마마는 궁중에서 장독대 옆에 집을 짓고 간장을 지키던 주방 상궁을 이른다.

현재의 경복궁 장고는 2005년에 복원되었으며, 지금은 전국에서 수집된 장독들이 전시되어 있다.

 

 

 

 

 

 

 

▲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

 

 

 

-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 -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고 1890년(고종 27)에 지은 건물이다.

함화당의 "함화"는 "모두가 화합하다"라는 뜻이고, 집경당의 "집경"은 

"계속하여 공경한다"라는 뜻으로 두 건물은 별도의 건물이지만 복도로 이어져 있다.

함화당은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고, 

집경당은 고종이 신하들과 경서를 읽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두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도 철거되지 않은 건물인데 몇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태원전(泰元殿) 내부와 주변 풍경을 찍은 사진.

 

 

 

- 태원전(泰元殿) -

태원전(泰元殿)의 "태원"은 "하늘"을 뜻하는데, 

이곳은 1868년(고종 5)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태조의 어진을 모셨고, 이후에는 신정황후 조씨와 명성황후 민씨가 

세상을 떠난 후 빈전(殯殿,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후 

발인하기 전까지 재궁(관)을 모셔둔 건물)으로 사용되었다.

태원전 주변에는 부속 건물인 문경전(文慶殿)과 공묵재(恭默齋, "공묵" : 공손히 침묵함), 

영사재(永思齋, "영사" : 오래 생각하여 가슴에 새김) 등 의례용 건물이 있다.

문경전은 혼전(魂殿, 왕과 왕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임시로 신주를 모시는 건물)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태원전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가, 
1960년대 청와대와 인접하여 

육군 수도경비사령부와 청와대 경호부대가 있었으나, 

1993년 모두 이전한 후 2006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경복궁 혼전 영역(문경전) 발굴 조사 안내판.
창경궁 관람 때도 정비 공사 지역이 있어 

창경궁 전 지역을 온전히 다 관람을 못 했는데 경복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내판에서는 조사 기간이 2025년 9월(예정)까지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조사가 지체되고 있는 모양이다.

관람객으로서 조금 아쉬웠다.

 

 

 

- 문경전(文慶殿) -

왕과 왕비 사후 신주(神主)를 모시는 혼전(魂殿)으로, 고종 연간 경복궁 중건 시 새로 만들어진 전각.

왕의 신주는 3년, 왕비는 왕의 사후 종묘에 입향한 뒤 왕을 따라 배향될 때까지 혼전에 모심.

문경전은 1890년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 국장을 치를 때 처음 혼전으로 사용됨.

(혼전(魂殿): 발인 후 부묘(祔廟, 종묘에 신주를 옮기기) 전까지 신주(神主)를 모셔둔 곳.)

 

 

 

 

 

▲ 하향정(荷香亭).

처음 봤을 때는 "왜 저 위치에 저런 정자가 있나?"라고 느끼며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 하향정(荷香亭) -

하향정은 경회루 연지(蓮池) 북쪽에 있는 정자로, 1959년에 지어졌다.

하향정은 일반 정자에서는 보기 드문 육각형의 형태이며 규모는 작지만 

건축 기법이 섬세하고, 익공(翼工) 형식의 조선 후기 궁궐 건축 양식을 따랐다.

.

.
위 내용까지가 안내문에 적힌 설명이고 이 건물의 진짜 정체는 이승만 정부 당시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도너 부부가 경복궁 내에서 낚시를 즐기기 위해 불법(不法)으로 지은 정자라고 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 경회루(慶會樓).

창경궁, 창덕궁, 종묘, 경복궁을 관람하면서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겼던 유일한 건물이다.;;;

 

 

 

-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慶會樓)의 "경회"는 "경사스러운 연회"라는 뜻으로, 

경복궁 침전 영역 서쪽에 있는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하는 왕실 정원으로 꾸몄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다시 만들었다.

성종과 연산군 대에 수리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중건하였다.


경회루의 1층은 48개(둥근 기둥과 네모난 기둥 각 24개)의 

높은 돌기둥들만 세웠으며, 2층에 마루를 깔아 연회장으로 이용했다.

추녀마루에는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雜像,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신상神像의 모습으로 만들어 얹은 장식 기와)이 있다.

경회루는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 풍기대(風旗臺).

창경궁에서 봤던 풍기대를 경복궁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다만 창경궁에 있던 풍기대는 깃발이 있었지만, 경복궁에 있는 풍기대는 깃발이 없었다.

 

 

 

- 풍기대(風旗臺) -

풍기대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능했던 기상 관측기구이다.

18세기 유물로 추정하며,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다.

 

 

 

▲ 영추문(迎秋門).

 

 

 

- 영추문(迎秋門) -

"영추"는 "가을(秋)을 맞아(迎) 서쪽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서쪽 관문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경복궁 중건으로 재건됐고, 

이후 1926년 일제 때 전차 노선을 부설하며 철거됐다가 1975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됐다.

그 후로 43년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으나 2018년 12월부터 통행이 전면 개방됐다.

 

 

 

▲ 수정전(修政殿).

 

 

 

- 수정전(修政殿) -

수정전(修政殿)의 "수정"은 "정치를 잘 수행하다"라는 뜻으로, 고종 대 편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고종 대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은 건물이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가 들어섰고, 

이후 의정부(議政府)가 내각(內閣)으로 바뀌면서 내각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 초기 수정전 일대에는 세종 대에 훈민정음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있었다.

수정전은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 경복궁 내에 위치한 카페이자 기념품 가게인 "사랑".

 

 

 

 

▲ 용성문(用成門).

경복궁 관람을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 관람을 위해 

흥례문 광장 서쪽에 있는 용성문에 도착 후 찍은 사진.

 

 

 

용성문(用成門) -

용성문(用成門)은 흥례문 광장 서쪽에 있는 문으로서 

왕이 신무문(神武門, 북문)이나 영추문(迎秋門, 서문)을 통해 궁 밖으로 이동할 때 사용된 문이다.

 

 

 

▲ 국립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

 

 

 

- 국립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 -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의 격조 높은 왕실 유물을 전시하여 

조선왕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과 연계한 문화 공간으로 조성되어 

광복 60주년이 되는 2005년 8월에 부분 개관, 2007년 11월에 전면 개관하였다.

관람 시간은 주중·주말 10:00~18:00 (수·토요일은 10:00~21:00)이며 

2026년 1월 현재 관람료는 무료이다.

지하 1층, 1층, 2층 모두에 전시실(상설·기획)이 있으며 카페, 뮤지엄숍, 

물품보관소, 수유실 등 여러 편의시설도 있다.

 

 

 

 

 

 

▲ 국립고궁박물관 입장 후 2층 로비에서 찍은 사진.

전시실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기가 어려워서 조금 불편했다.

2층에는 조선 왕조의 상징물과 기록물 위주로 전시된 "조선의 국왕"실과 

조선 5대 궁궐의 역사와 왕실 가족들의 생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실이 있다.

 

 

 

 

▲ "조선의 국왕" 전시실에 들어온 후 찍은 사진.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모든 전시실 중에 실내가 가장 어두웠던 전시실로 

전시물을 소개하는 전시 설명문의 글자가 종종 잘 안 보일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어두웠다.

그래서 관람하는데 매우 불편했다.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의 모든 전시실에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전시 설명문의 위치가 제각각이라 설명문을 읽는 것도 불편했다.

전시 설명문이 바닥 또는 허벅지 높이에 있는 것이 많아서 

쭈그려 앉아서 설명문을 읽거나 허리를 푹 숙여서 읽어야 했다.

전시 설명문을 꼼꼼히 읽는 사람에게는 거의 최악의 관람 환경이지 않을까 싶다.

 

 

 

 

 

 

 

 

 

 

 

 

▲ "조선의 국왕" 전시실에서 찍은 여러 사진들.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태조 임금 금보(太祖金寶), 영조어진(英祖御眞), 

임금의 의자인 어좌(御座) 등 여러 유물을 볼 수 있었다.

 

 

 

경복궁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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