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그림책의 삽화를 보는 안목

 

그림책의 그림은, 단순히 문장의 설명이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 그 자체가 그림책의 내용, 주제, 세부를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뛰어난 그림책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강의 줄거리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글자를 읽지 못하는 아이도 혼자서 그림책을 읽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의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책은 그림만 현란할 뿐이지 아이들이 

이야기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그림책은 멀지 않아 아이들에게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림의 감상자가 아니니까요.

아이들은 그림책의 표지를 열면, 거기에 신비한 세계가 열리고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서 즐거운 체험을 하고 

신나는 모험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림책의 끝장을 닫으면서 비로소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요.

그러므로 그림책에는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림책의 삽화는 반드시 색채가 다양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흑백의 그림도 그 그림이 이야기의 내용과 일치할 때 아이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집니다.

 

삽화의 색채나 스타일은 그 이야기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려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유아용이라고 해서 부자연스럽게 귀엽게만 그린다는 것은 

어린이의 인격을 경시하는 처사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요.

언젠가 런던에 가서 백화점에 들렀을 때 유리장 속에 

3~4센티 키의 작은 동물 인형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를 깎아서 색칠한 수제 인형인데, 모두 양복을 입고 있었지요.

이 작은 쥐, 토끼, 다람쥐들이 어찌나 낯익은 모습들이던지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한 권의 그림책이었습니다.

"아아, 피터 라빗드!" 하고 내가 중얼거렸을 때 

젊은 점원 아가씨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영국의 한 젊은 여성이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어린이를 위해서 장난꾸러기 아기 토끼 이야기를 쓰고, 

거기에 수채화로 삽화를 곁들여 만든 것이 "피터 토끼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이름은 피아트릭스 포타라고 하는데, 후에 이 책은 그림책으로 

출판되고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애독하는 책이 되었지요.

 

이 책은 문고본 정도의 자그마하고 얼핏 보기에 조촐한 그림책입니다.

토끼들은 사람과 같이 양복을 입었습니다.

엄마 토끼는 바구니를 끼고 우산을 들고 시장에 가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정말 토끼가 있는 것입니다.

토끼들의 몸짓에는 토끼의 특성이 여실히 나타나 있어요.

사람의 얼굴을 토끼의 얼굴로 바꿔치기한 단순한 의인화하고는 다릅니다.

이야기에도 그림에도 토끼 그 자체의 성격과 생활에서 우러난 것이 

이 작은 책 속에서 자연스러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토끼들의 귀여움은 겉보기만의 것이 아닙니다.

울고 있는 아기 토끼는 정말 토끼인데 사람의 감정을 가진 존재로 그려져 있습니다.

포타의 그림은 억지로 귀엽게 그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포타의 마음속에는 토끼들의 세계가 생생하게 보이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포타는 어린이의 감정도 잘 알고 있었으며 

어린이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담아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피터 토끼 이야기"와 같은 그림이야말로 

그림책의 삽화가 지녀야 할 진정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의 작은 판 책입니다.

"피터 토끼 이야기"를 포타의 삽화가 아닌 

다른 화가의 그림으로 만든 대형의 그림책도 나와 있지만, 

그것을 포타의 작은 그림과 비교해 보면 훨씬 싱거워진 느낌이 듭니다.

 

포타는 작은 책이 더 귀엽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포타에게는 그 크기가 자신의 세계를 그리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은 그림 속에 섬세하게 필요한 것만을 그려냈으며, 

여백을 충분히 남긴 포타의 그림이야말로 참 "피터 토끼 이야기"의 

세계임을 이 그림책을 되풀이해서 보는 가운데 알게 될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디자이너인 딕 브루너의 "아기가 처음 만나는 그림책"도 작은 형태의 책입니다.

그리고 모양이 정사각형이어서 다른 책들과는 모습이 아주 다릅니다.

단순한 줄거리에 밝고 뚜렷한 색채, 간결한 모양과 선으로 그려진 

이 책은 2~3세 유아에게 꼭 맞는 책이지요.

 

 

 

첫 장을 열어보세요.

정방형의 한가운데 서 있는 토끼는 작가의 디자인 감각을 살려 

안정된 모습으로 책장 공간에 딱 들어앉았습니다.

이것은 그 이야기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고 보는 아기들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그림책의 모양은 큰 것이 좋다든가 작은 것이 좋다든가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는 

어떤 모양이 가장 적합한가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버지니어 리 버튼의 "장난꾸러기 기관차"는 

가로 31센티 세로 23센티의 대형 그림책인데, 

이것은 기관차가 도망치면서 모험을 하는 활달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지요.

 

또 원더 가그의 "백만 마리의 고양이"라는 책은 옆으로 긴 모양의 그림책인데, 

백만 마리의 고양이를 줄줄이 이끌고 다니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용을 보면, 

작가가 왜 이 모양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삽화의 색채에 관해서도 같은 이치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현란한 색채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거즈 윌리엄즈의 "하얀 토끼와 검은 토끼"라는 그림책을 봅시다.

노란 민들레 외에는 검은색과 엷은 하늘색 및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숲 속에 사는 하얀 토끼와 검은 토끼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그런 색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만약 여기에 빨간 꽃이나 초록색 나무를 잔뜩 그렸다면 

이야기의 조용한 분위기도, 독자를 끌어넣는 효과도 잃었을 것입니다.

매리 홀 옛츠라는 사람의 "숲 속"이라는 그림책이 있는데 이것은 흑백 그림입니다.

한 남자 어린이가 숲 속에 놀러 갔다가 여러 가지 동물과 만나는 공상 이야기인데, 

어린이의 마음속 세계를 그려내는 데에는 흑색이 정말 효과적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림책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만드는 책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세계를 어린이의 마음속에 펼쳐주기 위해 만드는 책입니다.

외형의 호화로움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그 그림이 

진정 그 이야기의 삽화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를 간파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들이 평소에 어린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어린이가 어떻게 즐기고 기뻐하고 감동하는지를 

어린이의 기분과 어린이의 눈으로 공감하는 경험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피터 토끼 이야기"와 같은 훌륭한 그림책을 

충분히 봄으로써 높은 안목을 기르십시오.

 

 

 

[출처]

bornart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