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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은 약 73세까지 살았다.(BC 551-479)

그래서 공자님의 회고는 70대까지 있다.

공자님이 자신의 인생을 "지우학(15), 립(30), 불혹(40), 지천명(50), 이순(60), 

종심소욕불유구(70)"라고 회고한 것을 공부하며 나름 느끼는 바를 정리해 보았다.

 

 

 

15세_志于學

 

15세는 우리 시대로 치면 중학교 3학년 시절이다.

사춘기이거나 사춘기가 조금 지난 시절이다.

우리 시대 학생들이 조숙하다고들 하나 리영희 선생의 자서전 [대화]를 보면 

리영희 선생의 중학생 시절의 생각들은 내 30대 생각과 비슷할 정도로 조숙하다.

 

어쩌면 거꾸로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너무 어린 것일지도 모른다.

청년의 시기는 굉장히 다면적이다. 어떤 상황이든 모두 좌절을 하는 시기다.

부모에게 독립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방황한다.

이런 시기에 공자는 좌절과 방황 속에서 "배움(學)"에 뜻을 두었다.

공자세가에는 양호에게 문전박대당한 것을 계기로 배움을 시작했을 것이라 한다.

이 또한 일리 있다는 생각이다. 나도 중·고등학생 시절 음악을 잘 아는 친구나 형님들을 보면서 

음악을 잘 알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부러우면 그것을 시작한다.

 

 

 

30세_立

 

15세에서 30세로 건너뛴다는 말은 15년 정도 배워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 정도 배우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배움을 바탕으로 독립하는 것이다.

 

 

 

40세_不惑

 

30세에서 40세까지 배웠다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경쟁한다.

나는 이 경쟁은 서로를 파괴하는 경쟁이 아닌 서로를 끌어주는 생산적 경쟁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익히는(習) 과정이다. 쉽게 말해 질의·응답 과정이 아닐까 싶다.

배운 것을 10년 정도 복습한다.

이렇게 배움 15년, 익힘 10년을 공부하고 나면 이제 어떤 주관이 정립된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이론이 생기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주관이 확립되면서 세상에 도전을 시작한다. 이 느낌이 불혹이다.

 

 

 

50세_知天命

 

40세에서 50세 사이는 도전과 논쟁의 시기다.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세상과 부딪치며 품어왔던 뜻을 펼쳐나간다.

10년의 도전 시기가 끝나 50세가 되면 이제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된다.

즉 자신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생긴다.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역할이 전부가 아닌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론 자신의 이론도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어떤 보편적 인간으로서 둥글둥글해지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이 시기가 와야 비로소 "정치"라는 것을 할 수 있다.

 

 

 

60세_耳順

 

눈이 아니라 귀다. 한때 정치는 이미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광고였다.

정치의 본질은 보임이 아니라 들림에 가깝다. "이순"은 귀가 순하다는 말이다.

즉 누군가 나에 대해 험담하거나 나의 의지와 

반하는 내용을 듣게 돼도 매우 화내지 않고 용서하고 포용한다.

하늘의 명을 안 지 10년이 지났으니 감정을 다스릴 줄 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고요해지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서서히 물러날 때가 왔음을 자각한다.

 

 

 

70세_從心所欲不踰矩

 

서서히 10년간 물러나고 나면 진정한 자유가 온다.

이 자유는 일종의 "~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 바로 "자율"이다.

욕심나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 법도는 자신이 세운 법도니 당연하다. 인간은 자기 생각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종교"의 시기, 신을 요청하고 의지해나가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공자님은 공부와 정치로 일생을 살아가신 분이다.

이런 분이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면 분명 배움과 익힘 

그리고 도전과 정치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회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공자님은 "괴력난신"을 말했지만 결국 50세 이후로 "천명"으로 돌아간다.

살아있을 때는 현세적 삶에 충실하고, 죽을 때가 다가오면 역사(신)에 충실히 하는 태도, 

이것이 공자님의 삶의 회고가 아닐까 싶다.

 

한창 배우거나 익힐 시기인 20~30대에 일찍부터 성공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디자인은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치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로서 세상에 뜻을 두려면 50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공자님도 그랬다.

 

 

 

[출처]

egloos.zum.com/ecocreative/v/111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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