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 윤봉길 -
(1930년 10월 18일 망명지 청도에서의 서신)
안녕하세요.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효창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이봉창 역사울림관"에 이어서 방문했으며 방문 이유 또한 동일합니다.
[이봉창 역사울림관 방문기]
이봉창 역사울림관
제 나이가 31세입니다.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artistyang83.tistory.com
아래는 효창공원 소개글입니다.
1989년 사적 제330호 지정된 서울 효창공원은 국가지정 문화재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시는 곳이다.
이곳은 원래 조선 후기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를 비롯하여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 숙의 박씨의 자녀인 영온공주의 무덤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이다.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불법으로 주둔하면서 훼손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골프장이 들어서는 등 공원화되었다.
1940년에 조선총독부가 공원으로 고시한 이후 1944년에는 일제의 침략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위해 충령탑을 건립한다며 무덤들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옮겼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수 선생이 항일투쟁에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의사의 유해를 모셨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이곳에 썼다.
이어 1948년에는 임시정부 의장과 주석을 지낸 이동녕,
국무원비서장 차리석, 군무부장 조성환을 이곳에 모셨다.
1949년에 돌아가신 김구 선생의 유해도 국민장으로 안장하였다.
1990년에 의열사를 세우고 매년 이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기리는 합동추모제를 지낸다.
- 한국관광공사 -
[효창공원 홈페이지]
효창독립100년 메모리얼프로젝트
효창독립100년 메모리얼프로젝트는 시민과 함께 효창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바로 알고, 효창공원이 나아갈 방향성을 확립하며, 새로운 효창공원의 모습을 함께 그려나가는 프로젝트 입니다.
hyochangpark.com
효창공원을 방문한 소감은 운동과 산책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공원이지만
내부에 묘지가 있어서 그런지 약간은 기묘함을 느꼈습니다.
국립현충원은 경건한 참배 분위기를 위해 반려동물 출입 금지에 슬리퍼 외 현란한 복장 금지 등
금지 사항들이 있는데 이곳은 이런 금지 사항들이 있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이 공원 묘에 안장된 분들은 현충원에 안장되셨어도 이상하지 않은 분들이기에
경건한 참배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가 없는 공원 분위기가 기묘했습니다.;;;
아무튼 위와 같은 기묘한 느낌을 제외하면 한 번쯤은 방문해 볼 만한 공원인 것 같습니다.
아래부터는 사진입니다.
▲ 서울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 1번 출구 인근에서부터 걸어 올라가기 시작.
▲ 금양초등학교를 지나 효창공원을 향해 올라가다가 발견한 효창운동장의 모습.
방문 당일에는 2025 용산구민 한마음 체육대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 효창공원 정문 앞에 도착한 모습.
▲ 효창공원에 관한 소개문과 안내도의 모습.
▲ 동쪽 산책로를 따라 임정요인 묘역부터 관람하기로 했다.
▲ 임정요인 묘역의 모습.
[임정요인 묘역]
1919년 3·1운동 직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중국 상해에서 수립 및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1·2·5·6·7대 국무회의 주석직을 지낸 석오 이동녕 선생,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비서장 등을 역임한 차이석 선생,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하였고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조성환 선생이 모셔져 있다.
▲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니 효창공원의 역사를 소개하는 표지판들을 볼 수 있었다.
▲ 공원 내부에는 어린이놀이터와 농구장 등이 있었으며
근처 숙명여자대학교로 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었다.
▲ 원효대사 동상의 모습.
[원효대사]
원효(元曉, 617년 ~ 686년)는 삼국시대와 신라의 고승이자 학자, 사상가, 작가, 시인, 정치가이다.
해골물을 통해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 옛 샘터(우물터)의 모습.
이곳에서 손, 발을 씻거나 마시면 안 된다.;;;
▲ 북한 반공투사 위령탑의 모습.
[북한 반공투사 위령탑]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은 함경남도 배공(排共) 청년단 등 북한에서 김일성 세력에
맞서 싸우다 죽어간 유명·무명의 『자유투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이 탑은 196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 현대회장 등
정계·재계 인사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건립됐었다.
배공청년단은 1949년 7월 북한에서 검거됐던 조직으로,
가담했던 단원 수는 2천여 명에 이르렀다.
단원 대부분은 49~50년 사이 공산당에 의해 인민재판 등의 형태로 처형됐으며,
일부는 남한으로 피신해 왔다.
위령탑 앞 비석에는 배공청년단원 중 한자(漢字) 실명이 확인된 18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대한노인회 서울지부 건물의 모습.
▲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의 모습.
넓어서 그런지 약간은 휑한 느낌이 들었다.
▲ 의열사(義烈祠)라는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중.
▲ 의열사(義烈祠) 정문의 모습.
관람 시간은 월~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무료이다.
주말에 방문한 탓에 안타깝게도 내부는 관람하지 못했다.
(토/일/공휴일 관람 문의는 공원관리사무소로 연락하라고 하는데 어색해서 안 했다.;;;)
[의열사(義烈祠)]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과 임정주석 김구 선생,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의 삼의사 등 7인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숨은 고양이 찾기;;;
▲ 삼의사(三義士) 묘역의 모습.
[삼의사(三義士) 묘역]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지금의 루쉰공원)에서 당시 천황 히로히토의
생일 행사 때 물통 폭탄을 던진 매헌 윤봉길 의사와
일본 도쿄에서 히로히토 천황을 폭사(爆死)시키려다가
미수에 그쳐 일본군에 의해 사형을 당했던 이봉창 의사,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 했다가
실패하여 옥사(獄死)했던 구파 백정기 의사의 묘역이다.
삼의사 묘역에 가보면 비석 글씨가 유독 하얀 가묘(假墓)가 있는데(바로 위 사진에서 가장 좌측에 있는)
1909년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일본의 정치가이자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불렸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유골이 안장될 묘소이다.
(2025년 4월 현재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 삼의사(三義士) 묘역을 떠나 효창공원 광장으로 가는 중.
▲ 효창공원 광장 호수에 파란색 기둥이 있는데 점지(點指)라는 이름의 조형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둥 바닥판에서 놀고 있는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점프를 해서 간 건지 모르겠지만 호수 한가운데 고양이가 저렇게 있으니 참 의아했다.
[점지(點指) 조형물의 의미]
조형물의 수직적인 구조는 선열들의 정기가 이곳에 깃들어 있다는 성스러운 장소임을 의미하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임을 상징하며, 사각형의 투명한 유리 구조체는 신비와 성스러운 공간의 방으로
선열들의 얼이 우리 후손에게 투명하게 열려 전달되는 장소임을 의미한다.
즉, 작품의 조형적 의미인 "점지(點指)"는 우리의 정기, 뿌리와 같은 의미를 지니며,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땅의 내부(땅과 연결되는 수면의 홀)로 귀결되어 소통한다.
▲ 폭탄을 던지는 모습을 표현한 이봉창 의사 동상.
이상으로 효창공원 방문 편을 마치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