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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을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니, 
이러하고야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

 

 

 

 

 

 

 

▲ 1층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기 전 찍은 사진.

 

 

 

 

▲ 2층 전시관 입구의 모습.

 

 

 

 

▲ 2층에서 찍어본 백범좌상(白凡坐像)의 모습.

 

 

 

 

 

 

 

 

▲ 김구 선생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창기 활동을 담은 전시물.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영어: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는 

1919년 발표된 3·1 독립선언서 및 3·1 운동에 기초하여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망명정부이다.

간략히 임정이라고 한다. 1919년 4월 11일 중화민국 상하이시에서 수립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해산하였다.

 

- 위키백과 -

 

 

 

 

 

 

 

▲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白凡逸志)에 관한 전시관의 모습.

 

 

 

[백범일지(白凡逸志)]

백범 김구가 1929년 상해와 1942년 충칭에서 집필한 자서전이다.

상편은 김인(金仁) · 김신(金信) 두 아들에게 쓴 편지형식으로

머리말을 1929년 5월 3일 상해에서 기록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책 서두에 실린 ‘저자의 말’은 1947년 개천절로 명기되어 있어

『백범일지』가 근 20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된다.

 

과장이나 수식이 없이 사실대로를 밝히는 데 주력한 이 전기에서, 

상해 집필의 상편이 「우리집과 내 어린 적」 ·

 「기구한 젊은 때」 · 「방랑의 길」 · 「민족에 내놓은 몸」의 순서로 엮어져 있다.

하권은 김구가 주도한 1932년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두 차례에 걸친 항일거사, 

곧 이봉창(李奉昌) 의사의 1·8일왕(日王)저격의거와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4·29상해의거로 임시정부가 상해를 떠나 중국 각처로 표류하다가 

충칭으로 옮겨가 1942년 제2차세계대전 중에 임시정부 청사에서 

집필한 것으로서 칠순을 앞둔 망명가의 회고기록이 되고 있다.

하권에는 「3·1운동의 상해」 · 「기적 장강 만리풍(寄跡長江萬里風)」 등의 제목 아래 

광복군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국제연합군의 힘으로 민족해방을 맞게 되기까지의 

투쟁역정을 엮고 있는데 하권에서 보이는 임시정부의 환국이나 

삼남(三南) 순회 대목의 기술은 1945년 말 또는 1946년 초에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상 · 하편 뒤에 붙은 「나의 소원」은 「민족국가」 · 「정치이념」 ·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등 

세 편의 글로 된 완전독립의 통일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김구 민족이념의 역사적인 문헌으로 정평이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백범일지 원본의 모습.

국한문혼용체로 글씨가 상당히 빼곡하게 적혀있었는데 원본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 

이걸 한국어로 윤문하고 번역할 때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씨 좀 크게 쓰시지-라는 생각이.;;;

 

 

 

 

 

▲ 관람객이 크게 제작된 백범일지의 책장을 넘기면서 터치를 통해 

세부 정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백범일지 디지털 북 키오스크의 모습.

백범일지에 수록된 내용 전부는 아니고 일부분만 터치를 통해 세부 정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현 경찰청장), 내무총장(현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령(현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으로 활약했을 당시 내용을 담은 전시물.

 

 

 

 

 

 

 

 

 

 

▲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은

일제를 피해 피난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를 설명한 전시물.

 

 

[훙커우 공원 의거(虹口公園 義擧)]

1932년 4월 29일 일본은 상해사변(上海事變)을 일으켜 상해를 점령한 뒤 

전승기념 및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을 상해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거행하였다.

이때 비밀항일결사인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단원인 윤봉길이 

사열대 위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요인을 폭살시켰다.

 

의거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윤봉길은 자폭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본군에 붙잡혀서 일본 대판(大阪)에 이송되어 12월 18일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윤봉길은 김구(金九)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김구의 지시로 이 거사를 행하였다.

 

 

 

 

 

 

 

▲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활동 내용을 담은 전시물.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은 김구의 주도 하에 

1931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외적, 대내적인 혼란을 타개하고자 

특무활동을 위한 기구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였다.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에 나서기 전 김구 선생에게 건낸 회중시계의 모습.

 

 

 

 

▲ 김구 선생의 현상금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전시물.

 

 

 

 

 

 

 

 

▲ 2층 추모공간 내부의 모습과 추모공간에서 바라본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

 

 

 

 

 

▲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주석으로 활동했던 내용을 담은 전시물.

 

 

 

 

▲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에 관한 내용.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다양한 활동은 담은 전시물.

 

 

 

 

 

 

 

 

 

 

 

▲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창설과 그 활동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전시물의 모습.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한국광복군은 1940년 중국 충칭에서 창설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이다.

약칭하여 광복군이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초기부터 군대의 편제와 조직에 관한 법규를 마련하여 

군대 창설을 도모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에 정착하면서 광복군을 창설하였다.

병력모집과 확충에 주력하여 광복군의 규모는 급속히 확대되었다.

1945년에는 미국 OSS와 협력하여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였으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실행 직전에 무산되었다.

광복 후 미군정 당국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아 

무장해제된 상태로 귀국하여 1946년에 해체되었다.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

 

 

 

백범김구기념관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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