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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곧 30이 되는 신입 아티스트 지망생입니다. 업계가 불안하다고 하는데 걱정되네요.

이 업계에 취업하는 게 전망이 있을까요? 포트폴리오 첨부합니다. 독설 부탁드려요.

 

 

A :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나이도 나이고, 업계에 불안한 소식만 늘어가니까 말이죠.

 

한 가지 재미있는 예를 들어 볼게요.

 

옛날 애니메이션 업계에 촬영감독님이라고 있었습니다.

셀로 그린 애니메이션을 한 장 한 장 촬영해서 필름으로 만드시는 분이었지요.

광선검이나 빛 효과 같은 특수효과는 이분들이 촬영할 때 

다중 노출 기법 등을 동원하지 않으면 만들지 못했었습니다.

거대하고 비싼 촬영기기와 촬영감독님은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의 최고 기술자이자 최종 완성자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독님들이 순식간에 모두 직업을 잃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포토샵"이 나오고 난 후부터입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이제는 셀에서 할 필요도 없어졌고, 각종 3D와 특수효과를 

비싼 장비 필요 없이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게 바뀌었기 때문이지요.

 

그다음 예를 들어 볼게요. 한 사람의 얘기입니다.

그 사람은 전문대학교 출신입니다. 게임과 전혀 상관없는 과였죠.

그리고 잘 다니던 회사를 내팽개치고 그때까지 취미로 게임 만들던 팀에, 

월급도 받지 못한 채 들어가서 일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 사람은 솔직히 앞으로도 계속 월급 받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냥 이렇게 골방에서, 만화가들처럼(지금이나 그때나 만화가들은 가난했었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돈도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지금은? 좋은 회사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제가 본 것만 해도 이런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누구도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다면 로또나 사지 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겠습니까?

게임업계가 말씀하신 대로 전망이 밝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한가지 묻죠.

 

게임업계를 선택한 이유는 "전망이 밝아서" 입니까?

"본인이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 입니까?

"전망이 밝아서" 라면 빨리 포기하시고, 편안하게 사십시오.

이 일, 안 편합니다. 화려해 보이십니까? 애초에 이 일을 왜 선택하신 겁니까?

전망이 밝다는 "보장"이 없으면 안 하실 생각이었단 말입니까?

본인은 아닐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왜 게임회사에 오려고 하는 겁니까 도대체?

요새 실무의 사람들 생각을 말씀드릴까요?

D모사의 유명한 TD님이 말씀하신 명언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회사에 들어왔지만, 

요새 신입사원들은 취직하고 싶어서 게임을 만드는 척한다."

 

신입사원들 면접 볼 때 가려내는 게 바로 저거입니다.

특히 그래픽들. "그림을 그리고는 싶은데 그림은 배고픈 직업이라 

가장 돈 많이 준다는 게임회사에 가야지" 따위의 생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진짜 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본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게임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높다고 하죠.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지죠.

 

"게임과 그림,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쪽을 일부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뭘 선택하겠습니까?"

 

그럼 잠시 고민하다가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게임을 만들러 온 게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러 온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도 실력만 좋다면 뽑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정도는 괜찮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간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일단 시작은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오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 정도로 실력이 좋으시다면야 할 말이 없습니다만.

본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죠.

 

"게임과 안정된 생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쪽을 일부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뭘 선택하겠습니까?"

 

추가로 말씀드리지요. 문화 업계는 그런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개그맨들이 모두 유재석만큼 돈을 많이 버나요?

개그맨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나요?

개그맨을 하려는 사람들이 전망을 따지면서 하는 걸까요?

만화가 중에 부자가 있기나 합니까? 그럼 만화가들은 왜 그런 불안한 생활을 할까요?

안정된 생활을 원하신다면, 지금 빨리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공무원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입니다. 그쪽 준비하세요.

 

성공 못 할 것 같으니까 안전한 곳에서 적당히 구겨서 살아가자는 

그런 삶은 미안하지만, 우리 업계에는 절대 맞지 않습니다.

미안하지만 여기는 싸워서 이기는 전쟁터입니다.

"경력자 자질 부족"이라는 게임백서의 그래프가 무슨 의미인지 아직 이해 못 하신 것 같네요.

거기다가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본인의 지금 수준의 실력으로는 

업계의 전망을 걱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마치 대학을 들어갈 성적이 안 되는 학생이 대학 졸업 후 

취업률이 낮을 것 같다고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업계가 어둡다고요.ㅎㅎㅎ

죄송하지만 아무리 업계가 어두워도, 상위 50%의 실력자는 걱정 없이 살아갈 겁니다.

그리고 상위 10%의 실력자는 대기업에 부럽지 않게 살아갈 겁니다.

자신의 실력이 없음을 두려워해야지, 업계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구 멸망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지요.

그건 왜 걱정 안 하시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네요.

그리고 이미 국내에서도 업계가 정말로 엉망이 되면, 중국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데려가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인재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국내 업계가 어둡다고요?ㅎㅎ세계는 넓어요.

실력만 있으면 통역을 붙여서라도 데려가는 게 

이 업계인데 도대체 뭘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그래요. 실력이 지금 정도로 계속 가신다면, 

업계의 거창한 생각 이전에 일단 취직부터 걱정하세요.

 

신입이어서 걱정된다고요?

경력직은 특별대우라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실력 없는 사람은 경력이건 신입이건, 업계가 발전해도 앞날이 캄캄할 겁니다.

그건 옛날부터 늘 그래 왔어요.

 

업계가 활황일 때요. 실력 좋은 사람이 밀려들다 보니까 

실력 없는 사람은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어요.

업계가 불황이라고요. 실력 좋은 사람만 남기고 실력 없는 사람은 잘릴 겁니다.

 

네.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현업에 있는 오래된 사람으로서, 

대학교수로서도 잘 모르는 학생의 투정을 받아주는 건 많이 해본 일이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살짝 삐직해서 제가 말투가 지나치긴 했습니다. 죄송합니다.ㅎㅎ

하긴... 학생들 대상으로도 상담할 때 이렇게 얘기하긴 하는군요.

 

슬램덩크의 명대사죠.

 

"풋내기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풋내기라는 걸 아는 것부터다."

 

 

 

정리하죠.

 

1. 의지 : 일단 본인이 정말 게임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건지 

게임회사가 돈 많이 주고 안정적이니까 기웃대는 건지 다시 생각해 보세요.

 

2. 실력 : 일단 실력이 실무 사람들과 같이 일 할 정도의 

수준이 된 다음에 업계의 미래를 고민하시든가 하세요.

 

 

PS. 화나지 않았어요.

단지 제가 사랑하는 업계에, 이 일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득하기를 바랄 뿐.

1대 1 독설 원하시면 언제건 찾아오세요.

 

 

 

[출처]

chulin28ho.egloos.com/5719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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