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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는 직접 예술을 만들 수 없다.

그가 고용한 사무원들 역시 죽었다 깨어나도 예술을 만들 수 없다.

전화를 받아주는 비서도, 매장 직원도 할 수 없다. 위원회도 배달원도 도움이 안 된다.

이제 베끼든 훔치든 어떻게든지 예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 윌리엄 에디슨 드위긴스, "예술가를 다루는 요령", 1941, 

「그래픽 디자인 들여다보기 3」비즈 앤 비즈 -

 

 

기업 활동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이 좋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애플" 매장 앞에 줄을 선다.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디자인이 경쟁력"이라고 하고, 

서울시는 디자인 때문에 살맛이 난다고 한다.

온갖 매체에 등장해 떠드는 사람들은 디자인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공상을 늘어놓을 뿐, 

막상 "디자인"의 실체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본질과 정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어떤 것을 단편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무모하기 짝이 없다.

디자인을 잘 써먹어서 이른바 "경쟁력"이란 것을 갖추고자 한다면, 

일단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기업 활동과 연관돼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좌파 예술과 자본의 만남

 

19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기업과 디자인, 대중문화라는 삼각편대의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당시 미국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제1, 2차 세계대전 직후 

사회 재건을 이끄는 사업가들에 편승하여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희망에 차 있었다.

폭발적으로 규모가 늘어난 제품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기업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자본의 비호 아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전위적 디자인 철학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기회를 노리고 미국으로 이민 간 유럽 디자이너들도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기업들은 역사상 최대의 

산업 확장기라는 호재를 타고 폭풍 같은 성장을 이뤘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발생한 예술운동 "모더니즘"이 미국 대중문화 유행을 형성하면서 

신제품 수요가 엄청나게 일어났던 상황도 크게 한몫했다.

당시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광고 사업가 어네스트 엘모 칼킨즈는 

소식지 "Studio Yearbook"에 문화적 유행의 상업적 이용을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현상을 전문용어로 "진부화"라고 한다.

우리는 더는 제품이 낡아서 부서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교체하는 게 아니라 더 새롭고 멋진 것을 만끽하기 위해 바꾼다.

사람들은 프랑스식 일체형 수화기의 편리함과 세련된 외형에 이끌려 전화기를 바꾸기로 했다.

고객의 호응에 힘입은 전화기 회사는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몇몇 예술가에게 

현대식 가정과 사무실에 잘 어울리는 프랑스식 전화기 디자인을 요청했다.

모든 사업 영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 어네스트 엘모 칼킨즈, "미국 광고 예술", 1936, 

「그래픽 디자인 들여다보기 3」 (비즈 앤 비즈, 2010) -

 

 

오늘날엔 너무도 당연한 "의도적 진부화", "좋은 취향을 곁들인 제품" 같은 전략은 

19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최초로 사업 영역에 도입되었다.

같은 제품이라도 겉모양을 달리해서 한 번 더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업가들은 

자사 제품을 번지르르하게 포장해 줄, 상업 예술가(당시의 디자이너)를 찾기 바빴다.

 

여기에서, 미국에서 문화 트렌드의 하나로 받아들인 

유럽 "모더니즘" 운동이 사실 사상적 측면에서는 

미국 기업들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모더니즘 디자인은 유행을 타지 않는 "영속적(timeless)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중요히 여겼다.

영속성을 위해 재료를 정직하게 사용하고, 기능에 근거한 최소한의 형태를 취하고, 

특정 개인과 집단의 취향을 완전히 배제한 객관적이고 근원적인 모습을 띤 사물을 만들었다.(1)

 

하지만 미국 기업과 예술가들은 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더니즘 사상이 낳은 간결한 형태의 사물과 메시지가 

새롭고 이국적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른바 "모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트렌드를 탄생시켜 소비를 조장하고자 했을 뿐이다.

영속성을 표방하는 디자인이 한시적인 트렌드로 와전된 것이다.

 

 

 

기업과 디자이너의 뒤틀린 밀월 관계

 

기업의 디자인은 제품 치장에 그치지 않고 회사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구축하는 시각 이미지를 개발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단편적인 심벌마크가 아닌, 단일한 시각 시스템으로서의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1950년대에 성장한 미국 기업들이 처음 시도했다.(2)

 

"CBS", "IBM", "웨스팅하우스", "ABC", "인터내셔널 페이퍼", 

"체이스 맨해튼", "모바일", "벨(AT&T)", "아메리칸 에어라인" 같은 

유수한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자사 이미지를 일관되게 드러내기 위해 

시각 아이덴티티 시스템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수행한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모더니즘 방법론을 그대로 따오는 편을 택했다.

가장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와 글꼴로 기업 그래픽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모든 제품과 서비스, 홍보물에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단일 이미지를 사람들의 인식에 깊이 각인시킨 것이다.

 

아이덴티티 디자인 시스템은 큰 성공을 거두며 

다국적 기업 유통망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일에 뛰어들었던 디자이너들은 돈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디자인 대학들은 앞다투어 "CI (Corporation Identity)", 

"BI (Brand Identity)" 등의 과목을 개설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사업가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기업 경영의 열쇠를 

디자이너가 쥔 셈이었으니 취업은 백 퍼센트 보장인 셈이었다.

 

기업 내부에 디자인 부서를 개설하거나(인하우스 디자인) 

외부 디자인 스튜디오에 일괄적으로 디자인 프로젝트를 위탁하는 산업 구조가 형성됐다.

이때 자리 잡은 "클라이언트-에이전트"라는 기업-디자이너 구도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얼핏 생산적으로 보이는 이 상생 관계는 사실 그 내부가 치명적으로 뒤틀려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유럽 모던 디자인 선구자들은 예술과 디자인을 통해 

총체적 인간을 완성하고 새로운 유토피아적 가치를 제시하고자 했다.

 

당시 모더니즘은 미술공예 운동에 바탕을 두고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과 연결된 급진 좌익 운동인 동시에(3) 

건축, 공예, 회화, 조각, 패션, 디자인 등의 분야를 한데 아우르는 거대한 예술 철학이었다.(4)

 

이윤추구와 경제성장만을 보고 달렸던 미국 기업은 

유럽 모더니즘의 이상향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1950, 60년대 미국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 스타일은 전략적 마케팅의 하나로 

유럽 문화의 표피를 모방하여 그것을 미국과 세계 소비시장에 맞게 개조한 결과물일 따름이다.(5)

 

유럽 모더니즘 디자인의 근본 가치가 미국 기업이 지향하는 

경제적 목표와 많은 부분에서 상충하는 것이었음에도 

그 둘이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은, 모더니즘의 가치를 실험하는 데 필요했던 

막대한 자본을 미국 기업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기업의 돈을 이용했고, 

기업은 회사 성장을 위해 디자이너의 능력을 이용한 셈이다.

애석하게도 이런 표리부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무너진 자긍심

 

미국 기업 디자인의 전성기가 1950~60년대라면, 

한국에서는 이보다 약간 늦은 1970년대부터 기업이 고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서의 기업 디자인은 

80년대 이후에 중요한 디자인 비즈니스로 등장했다."(6)

국내 기업들은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디자인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대학 디자인 학과와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가 생겨났다.

미국에서 40년에 걸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이 한국에서 10년 만에 압축적으로 재현됐다.

 

한국 사회의 여러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디자인은 

미국 기업 디자인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이식은 겉으로 보기엔 꽤 순조로워, 한동안 한국에서 디자인은 

"경제 발전 및 수출 동반자"(7)의 역할을 하는, 

다소 애국적인 동시에 이국적인 느낌의 직업으로 여겨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 디자인의 모태였던 

유럽 좌파 아방가르드 예술 철학이 철저히 간과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예술을 통한 사회 개혁이라는 속내는 깨끗이 잊힌 채,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디자인이라는 왜곡된 개념만 유입된 셈이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 기업 관련 일을 했던 디자이너는 

기업을 도움으로써 사회에 긍정적 이바지를 한다고 믿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만 해도 불모지였던 디자인이라는 영역을 

일종의 비즈니스 활동으로 "격상"시키는 중책을 수행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있었다.

이런 허술한 직업적 소명의식은 1990년대를 지나며 송두리째 무너졌다.

한국 산업디자인의 본보기였던 미국 산업 디자인, 

특히 기업 아이덴티티와 광고 디자인 분야가 서양 디자인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뜨거운 감자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을 불특정 소비자로 취급하고 제품을 팔기 위해 지어낸 허위를 퍼뜨림으로써 

"자본이 주도하는 문화 산업의 일방적인 놀음에 좌지우지되며 현실을 왜곡하는 

한낱 거짓된 활동으로 타락"했다는(8) 혐의가 미국 산업 디자이너들에게 쏟아졌다.

 

우리는 디자인에 대한 이런 식의 잘못된 이해를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

광고, 마케팅,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디자이너는 이 사회의 

정신적 환경을 상업적 메시지로 가득 채워 세상 사람 모두가 소비자로서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게끔 하는 세뇌 활동에 일조한다.

오로지 "소비"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한 극히 해로운 메시지가 만연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우리가 모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 "중요한 일을 우선으로 선언문" 중에서, 1999, "Emigre #51", 

(1964년 작성된 캔 가랜드의 초안에 기초함) -

 

 

디자인계의 이런 자기반성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9) 90년대 말에 절정을 이뤘다.(10)

급기야 미국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대기업 관련 일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도덕성은 포기해야 하는" 일로 통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서 한국 디자이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수가 꼬박꼬박 잘 나오고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대기업 소속 디자인실은 디자이너나 학생들에게 여전히 인기 직장이긴 하나, 

그곳에서 자신의 창의적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디자이너가 의욕과 동기 없이 그저 생계를 위해 

직업을 연명하는 상황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은 언감생심일 따름이다.

 

 

 

디자인을 향한 디자이너의 마음

 

기업 관련 일에서 디자이너가 어떠한 가치도 찾지 못하는 상황에는 사업가의 잘못도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업인은 더는 존경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기업을 돈을 빨아들이고 토해내는 거대한 익명의 조직체라고 생각한다.

많은 기업이 단기적으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반면, 

장기적인 연구나 문화 활동에 대한 후원은 뒷전이다.

전문성, 공익, 타 집단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다.

 

타사의 성공작을 베끼고, 자사 제품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 교묘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허황한 트렌드를 날조해 어떻게든 소비자가 새것을 사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베끼기"와 "은폐", "거짓말"을 좀 더 세련되게 하려고 디자이너를 이용한다.

예술가는 진실을 파헤치고 공예가는 사물의 쓸모와 완성도에 집착한다.

예술가와 공예가의 측면을 동시에 가진 디자이너는 도덕성에 민감하다.

그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물, 허위 메시지, 기만적 이미지, 

읽기 어려운 텍스트, 권위주의적 관습을 혐오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중매체를 다룬다는 책임의식까지 지닌다.

 

기업의 요구를 좇아 생전 본 적도 없는 제품의 광고를 만드는 디자이너는 

수천만 국민에게 허위를 유포한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사물이든 메시지든 자기 손을 거친 것은 모두 본인 작품으로 여긴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납품하고 보수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작품이 진실하고 쓸모 있기를 바란다.

부지런한 디자이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프로젝트를 연구하며 애정을 쏟는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맞추는 것 외에 자신만의 방식을 따로 개발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클라이언트의 승인을 받은 후에도 자신의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디자인을 가차 없이 뜯어고친다.

 

이런 디자이너에게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는 식의 요구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모든 기업 경영인과 임원, 마케팅 담당자들이 

자신이 디자인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이런 심각한 착각으로 인해 큰 조직 일을 하는 디자이너는 수십 명에 달하는 

"디자인 평가단"의 요구 사항을 일일이 반영하느라 작업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기업 측면에서 보자면, 예전과 다름없이 제품과 광고 디자인에 꾸준히 예산을 들이며, 

몇십 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상황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타의 기업 활동과는 달리 디자인의 핵심은 예산 규모에 있지 않다.

투자액 증가가 디자인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돈을 많이 쏟아붓는다 한들 디자이너가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펼칠 여건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디자이너를 디자이너답게 활용하기

 

산업 활동을 위한 디자인은 용역의 성격을 띤다.

사업가와 디자이너는 원칙적으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가가 디자이너와의 관계에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디자인 팀의 창의력을 옥죄는 결과가 발생하기 쉽다.

 

당신이 1800년대의 갑부 예술 상인이라 가정해 보자.

당신은 반 고흐에게 돈을 지급하고 좋은 그림 한 폭을 그려달라며 이렇게 주문한다.

 

"나는 고갱의 작품과 확실히 차별된 그림을 원합니다.

주조 색은 빨간색으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왼쪽 구석에 태양을, 중앙에 여성 인물을 꼭 넣어 주세요.

시간이 없으니까 2주 내로 완성해 주셔야 합니다."

 

이래서야 아무리 많은 돈을 지급한다 한들 좋은 그림이 나올 리 만무하다.

기업 제품과 메시지를 디자인하는 주체는 디자이너여야 한다.

사업가는 디자이너의 활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단속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디자이너는 계약상 피고용인이다.

따라서 월급을 타기 위해, 사무실 월세를 내기 위해 

디자이너는 사업가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고자 노력한다.

유능한 사업가는 디자이너에게 어떠한 구체적 요구 사항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최대한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그저 유용하게 / 멋지게 / 재미있게 해달라는 식의 폭넓은 얘기를 할 뿐이다.

필자는 운 좋게 그런 클라이언트와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다.

폴크스바겐 U.S. 코카콜라, 버거킹이 그런 경우였다.

그들은 으레 이런 식으로 디자인을 의뢰한다.

 

"앞으로 2년간 "코카콜라 제로"라는 신상품 홍보를 맡아 주세요.

다이어트 코크와는 다르게 다소 유머러스한 방향이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막연한 의뢰를 받은 디자인 팀은 마치 초원의 말처럼 창의력의 질주를 펼친다.

구체적 요구 사항이 없기에 생각의 범위도 제한이 없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동원해 우스운 스토리, 

멋진 그래픽, 과격한 발상, 참신한 아이디어를 펼칠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탄생한 아이디어는 캔 뚜껑 디자인부터 게릴라 콘서트까지 범위가 무한하다.

디자인 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업가는 

디자이너에게 처음부터 온갖 세부 요구 사항을 들이대고, 

작업 진행 내내 조직의 관행과 복잡한 승인 과정을 강요한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는 수백 개의 요구 사항 리스트에 짓눌리고 

매번 번복되는 회사 결정사항에 휘둘리다 결국 자포자기하고 

하루빨리 프로젝트가 끝나기를 바라는 지경에 이른다.

 

최악의 경우 사업가는 디자이너에게 벤치마킹, 영업 이익 실적, 시장조사, 

소비자 설문조사 같은 것들을 공부하라고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건 마치 권투 선수를 데려다 놓고 리본체조를 시키는 꼴과 같다.

비즈니스맨이 갖춰야 할 능력을 디자이너에게서 찾으려는 태도는 잘못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디자이너가 비즈니스를, 사업가가 디자인을 알아야 한다는 괴소문이 들리는데, 

현명한 사업가라면 이런 허무맹랑한 헛소리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비즈니스맨의 성향을 띠는 디자이너는 더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물론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업가와 디자이너는 서로 "인정"하는 관계를 이루면 충분하다.

억지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역으로 더 큰 오해와 불신을 낳을 뿐이다.

디자이너가 뭘 하든 무조건 내버려 두란 뜻은 아니다.

벌판에서 뛰놀던 말은 마구간으로 돌아와야 한다.

 

디자이너는 회사 경영 비전과 재정 사정에는 관심이 없다.

시장 상황에 대해서도, 소비자의 취향에 대해서도 어둡다.

사업가는 이런 부분에서 비즈니스적 능력을 발휘해 

디자인 팀을 적절히 단속하고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디자이너에게 기업 임원을 맡기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좋은 디자이너의 자질은 좋은 사업가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간혹 디자이너 중에 우수한 사업적 수완을 갖춘 사람도 있으나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다.

고도의 경지에 오른 디자이너는 세세한 사항에 편집증적으로 반응하고 

자신의 직관적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사업의 전반적 전략을 짜내거나 조직을 관리하기에 적합한 인재는 아니다.

 

그들을 높은 위치에 올려 결정권을 쥐여주기보다는, 

조직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 놔두는 편이 좋다.

외부의 독립 디자인 사무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는 어떻게든 디자이너에게 낡지 않은 발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부 체계에 갇힌 디자이너는 자기 반복을 답습한다.

한정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습적 디자인만큼 낡은 게 또 어딨을까.

이 글은 매체의 특성상 사업가와 디자이너의 관계에서 

주로 사업가가 점검해야 할 부분을 위주로 했다.

좋은 관계를 맺기 이전에 좋은 디자이너나 디자인 팀을 찾아내는 일도 중요하다.

 

세상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 자유로운 여건을 보장해 줘도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수준 낮은 디자이너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기업가가 우수한 디자인 팀과 함께 일한다고 확신한다면 

제품과 메시지 디자인에 관해서 만큼은 그들을 완전히 신뢰해도 좋다.

디자이너의 통찰력은 개인의 단편적인 취향을 넘어서며, 

그들의 직관적인 판단 능력은 통계와 분석 자료가 

예측하지 못하는 창의적 디자인을 낳는 원천이다.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마케팅적 잣대로 평가하려는 시도는 금물이다.

디자인은 비즈니스에 종속된 활동이 아니다.

따라서 디자인의 가치는 비즈니스적 가치로 측정될 수 없다.

사업가와 디자이너가 서로를 인정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윤리적 제품 탄생과 기업 번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다른 쪽에게 강요하는 관계가 형성된다면 

양쪽 모두 이류로 전락하는 참혹한 결과를 맛보게 될 것이다.

좋은 디자이너는 상업적 가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직하고 수준 높은 디자인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때 사업가는 디자이너를 적절히 지원하고 단속함으로써 

도덕적 가치에도 부합하고 사업 성공에도 도움이 되는 디자인을 발굴해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말을 제때 풀어주고 불러들이는 일과 비슷하다.

디자인 팀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결국, 회사에 큰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 건강한 말들이 당신의 목장에서 자유로이 뛰놀고 풀을 뜯으며 번식하게 내버려 두라.

말들이 마구간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말과 망아지들은 고스란히 당신 것이 된다.

병든 말이 풀을 뜯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말은 목장에서 쫓아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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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및 각주

 

(1) 「Bauhaus 1919-1928」, The Museum of Modern Art, 1975, 20~29쪽 

"The Theory and Organization of the Bauhaus" by Walter Gropius.

 

(2) Philip B. Meggs, 「A History of Graphic Design: Third Edition」, 

John Wiley & Sons, Inc, 1998, 363쪽.

 

(3) Nikolaus Pevsner, 「Pioneers of Modern Design: 4th edition」, 

Yale University Press, 2005, 168쪽.

"Walter Gropious and the Modern Movement"

 

(4) Tim Benton, 「Modernism Designing a New World」, 

Victoria & Albert Museum Publishing, 2008, 150쪽, "Building Utopia" 섹션 전체.

 

(5) 부분 인용: 정시화, "문화 정체성과 디자인", 

「라라 프로젝트 01: 우리 문화의 제다움 찾기」, 안그라픽스, 2006, 78쪽.

 

(6) 인용: 정시화, "문화 정체성과 디자인", 

「라라 프로젝트 01: 우리 문화의 제다움 찾기」, 안그라픽스, 2006, 81쪽.

 

(7) 근현대 디자인 박물관 제4관: 경제발전 및 수출 동반자로서 디자인 역할 수행, 

서울 마포구 창전동 소재.

 

(8) 인용: 얀 반 툰, "디자인 그리고 깨어 있는 의식", 

「그래픽 디자인 이론: 그 사상의 흐름」, 비즈 앤 비즈, 2009, 103쪽.

 

(9) 1989년에 개최된 AIGA 콘퍼런스, "Dangerous Idea"에서 티버 칼맨을 비롯한 

몇몇 연사가 자본주의 시장에서 허위를 퍼뜨리는 디자인을 비판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10) 1999년 당시 암 투병 중이던 티버 칼맨은 1964년 캔 가랜드가 쓴 

"중요한 일을 우선으로 선언문"을 재발표 하기로 하고, 

당시 업계와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33인의 디자이너의 

서명과 함께 "에미그레"에 선언문을 싣는다.

 

 

 

[출처]

www.designerschool.net/readings/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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