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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화가인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여기저기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구상하는지에 관해 물어오곤 했는데 

여태 아버지에게는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단 생각이 들어 

글을 하나 써보겠다는 핑계로 당신이 하는 일과 몸담은 업계에 관해 물어보았다.

 

한국 미술 업계, 당신이 보기엔 어떠하며 

내가 보기엔 당신의 그림이 잭슨 폴락 뺨을 양쪽 다 후려갈기고 

강냉이 아래위로 다 털어줄 정도로 멋진데 왜 사람들은 그 진가를 몰라보는 거냐고.

 

 

 

오늘 SF MOMA, 잭슨 폴락 그림 앞에 큐레이터와 함께 우르르 모여있는 사람들.

당최 암만 봐도 우리 아빠 그림이 훨씬 낫구먼 뭘. 사람들이 거참.

 

 

 

도화백(이하 도): 한국 미술 시장은 청담동 앨리스야.

 

나: 안 봤음요. 한국산 드라마 마지막으로 본 게 파리의 연인.

아니 그것보다,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고 산골짜기에 틀어박히셨다는 분이 

드라마는 꼬박꼬박 챙겨 보십니까?

 

 

 

애기야 가자!(2004)

 

 

 

도: 아, 거참 촌스럽게 트렌드를 모르네.

어쨌든 청담동 앨리스란 드라마에 보면 말이지, 

그림에 재주 없는 재벌집 아들이 하나 나와.

아들이 계속 그림을 그리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니까 집에서 그 아들을 쫓아내는데, 

그래도 자기 아들이 비실비실하게 사는 건 도무지 못 봐주겠으니까 

사람을 시켜다가 그 아들 그림을 비싼 값에 막 사들이기 시작하지.

그래서 그림값을 막 띄우는 거야.

 

 

 

암만 봐도 미술 관련 드라마로는 안 보이는데, 안 봐서 내용을 모르겠..

 

 

 

나: 그림값을 띄워요? 아니 그전에, 보통 그림 가격은 어떻게 책정됩니까.

 

도: 우리나라는 호당 가격으로 그림값을 정하지.

호당 10만 원이라고 하면, 5호는 50만 원 이런 식으로.

 

* 여기서 호란 캔버스 크기의 단위로서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용하던 것이 현재까지 전해져 온 것.

캔버스 호수는 보통 0호에서 500호, 때로는 1000호 이상까지도 가는데 

호수 안에서도 F(Figure) / P(Paysage) / M(Marine) 이렇게 세 가지로 세분되는 데다 

용도별로 다르기도 하고, 1호의 10배가 정확히 10호인 것은 또 아니라서 상당히 복잡하다.

0호부터 10호까지의 규격은 아래와 같음.

 

 

 

 

 

나: 그런데 비전공자인 제가 보기엔 좀 웃긴 것이, 

그림이 크다고 해서 작품성이 더 좋은 건 아니잖아요.

뭔가 이건 더 넓은 캔버스를 채운다는 의미에서 

투입 노동력 및 재료 비용을 원가의 개념으로 산출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여하튼 은근히 이해가 안 되는 기준이네요.

 

도: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나: 유명 작가의 경우 이 호당 가격이 높다는 건데, 

사실 같은 예술이래도 문단 쪽은 좀 다른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글은 좀 읽다 보면 "이야기 전개의 완성도가 높구나."라던가 

"상당히 감정 묘사가 탁월하구나." 정도는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알 수 있단 말이죠.

그리고 감동을 하거나 재미를 느끼게 될 경우 

그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 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림은, 특히 현대미술, 추상미술의 영역은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르고 말고를 떠나서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아예 평가는커녕 

호불호를 말하기에도 많이 난해한 감이 없지 않단 말입니다.

이 경우에 작품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가요.

 

 

 

이런 전위적인 작품은 일단 제외하고

 

 

 

도: 그렇지, 문단보다 더 힘들고 정확한 기준 같은 게 성립되기가 

애초에 힘이 드는 게 추상화 이런 거는 아예 비전공자인 

일반인들은 봐도 이렇다저렇다 말하기가 힘드니까.

그래서 일반인들이 반추상을 더 선호하는 거지.

일단 보기에 색감이 예쁘고 형태가 너무 과격하지 않은, 

그리고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림의 주제를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작품들 위주로.

 

그렇다고 비전공자만 추상화나 현대미술을 봐도 모르고 전공자는 그렇지 않다, 이런 것도 아니야.

예를 들어 평론가 10명이 어떤 그림을 하나 놓고 

이거 작품성이 진짜 좋다 멋지다 이러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느껴지는 것도 없고 영 별로란 말이야.

그렇다고 거기서 이거 별론데? 이래도 전혀 씨알도 안 먹히는 상황이 돼.

 

이렇게 평가자의 수에 따라 판단이 경도될 수가 있고, 

또 다른 경우로는 예를 들어 삼성 본사 로비에 

어떤 작가의 추상화 하나를 딱 걸어놨다고 치자.

그러면 또 그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엄청나게 올라가는 거야.

여기서 그 기준이 뭐냐? 다른 사람들이 좋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비싸게 사니까.

 

좀 다른 이야기지만 그림이라고 하는 건 말이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그림이 참 좋다, 

갖고 싶다 이런 감정이 들게끔 하는 그림들이 누가 봐도 분명히 있는 법이야.

정말 좋다, 라는 거. 이런 게 바로 대중성인 거고, 작가 나름의 개성과 생각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미적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

 

사실 잘 찾아보면 그런 그림들이 많이 있지만 그걸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느냐 

아니냐는 철저하게 작가 개인의 영업능력에 달린 게 현실이야.

 

 

 

입성 → 대 to the 박

 

 

 

나: 그럼 평가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하고, 

초반에 언급하셨던 그림 가격 띄우기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요.

 

도: 가격 띄우기의 경우는 액수가 클수록 갤러리 화상들과 

컬렉터들의 장난질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해.

예전부터 고질적으로 있었던 문제야.

그런데 문제는 이게 갈수록 팀을 이루어서 조직적으로, 

아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거지.

 

이런 경우가 있어. 젊은 애들을 모아서 유럽이나 미국으로 공부, 파견을 보내.

그 후에 사실 현지 시장에서 그다지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황인데도 

컬렉터들을 현지로 보내서 고가로 그 그림들을 사들이게끔 하는 거야.

그리고는 한국으로 역수입한 후에 외국 무슨 유명한 경매에서 

고가에 거래된 그림이라며 웃돈을 받고 다시 팔아서 차액을 챙기는 식인거지.

 

한국에서 자본을 대고 현지 컬렉터들을 쓰기도 하고.

경매에 그림을 내고 사실은 아무도 주문은 안 하는데 

한 열 명 정도 팀을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가격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올리는 일도 있어.

방법이야 수도 없이 많겠지만, 작품성은 뒷전이고 철저한 경제논리를 토대로 해서 

수익을 내고자 이루어지는 일들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지.

 

기장 같은 예술촌에는 굶어가면서도 꿋꿋하게 계속 

활동하는 작품성 좋은 재야 작가들 정말 많아, 진짜로.

어쩌다 한 번씩 국내 중견작가라고 전시회 하는 거 보면 

내가 볼 땐 정말 그런 재야 작가들이랑은 비교도 하기 

힘든 수준의 작품을 내놓고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겨놓은 경우도 많더라고.

그런데 그런 걸 보고 그림 모르는 사람들은 비싸군, 고로 아주 좋군! 이러는 게 현실이지.

 

 

 

[출처]

ppss.kr/archives/1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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