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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림이 어렵다며 짜증을 내면서 하는 말.

하지만 대화는 짧은 시간에 끊어졌다.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슨 방법을 알아야 그리죠?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방법은 이미 기초에서 다 배웠습니다.

나머지는 작품을 하면서 터득해야 합니다."

 

"안 되는데 어떡해요? 원하는 대로 그릴 수가 없어요.

무슨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것을 가르쳐 주세요."

 

"직접 그려보시면 압니다."

 

"그릴 수가 없다니까요!"

 

입시학원에서 생긴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 있고, 못 그리는 학생이 있다.

강사는 어느 학생에게 신경을 쓰겠는가?

당연히 둘 다 신경 쓴다. 하지만 그림을 가르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에게는 전체적인 흐름이나 느낌 따위를 말해준다.

그리고 세부적인 부분을 손봐주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거의 100% 자신의 힘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그림을 못 그리는 학생에게는 눈이며, 코, 입술 따위를 그리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실제로 세부적인 부분을 손봐주고 따라 하라고 한다.

결국, 선생이 70%, 학생이 30%로 완성한 작품이 나온다.

실력은 선생만 향상된다. 학생은 자신의 힘으로 완성한 그림이 거의 없어진다.

물론 이렇게 하는 이유는 못 그리는 학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한 것을 절대로 알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강사와의 친근감도 높이고 최선을 다한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더욱 안 좋은 교육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전시회를 끝내고 찾아온 작가와 나눈 이상한 대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멍하게 됩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를 모르겠어요. 의욕도 안 생기고, 

뭘 그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뭔가를 해야 하는데..."

 

"조금만 쉬고 곧바로 그림을 그리세요. 그리다 보면 알게 되겠죠."

 

"방향을 못 잡겠어요. 그렇다고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순 없잖아요."

 

"답습을 하든, 새로운 것을 찾든 관계없이 그림을 그리세요.

그림을 그리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잘 안 된다니까요!! 왜 자꾸 윽박지르기만 하세요?

저도 잘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무슨 노력을 한단 말입니까?

머리로 생각만 한다고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림에 관한 문제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입시 공부나 여타의 단순한 기술 체계들은 

하나의 단계 위에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한 단계가 부실하거나 잘못되면 다음 단계로 진행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최소한 예전의 시스템은 이 방식이 효율적이었다.

왜 예전에 이 방식이 맞는가에 대해 긴 설명은 하지 않겠다.

옛날 시스템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책을 읽는다고 치자, 책을 읽다 보면 모르는 개념이 나오고 생소한 지식이 튀어나온다.

이것을 모르면 답답하다.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 몇 장을 못 넘기고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독서를 잘하는 사람은 모르고 낯선 개념이 있더라도 그냥 진도 나간다.

일단 책을 끝까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해서 관련된 많은 책을 

읽고 나면 난해한 부분들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된다.

 

음식을 만든다. 요리를 한다.

요리사는 좋은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양념을 하고 조리방식을 선택한다.

조리시간과 각 재료 간의 궁합, 영양소, 맛의 어울림 따위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음식을 만든다.

그런데 원하는 재료가 준비되지 않았다. 재료의 다듬음이 어설프다. 양념이 부실하다.

하지만 훌륭한 요리사는 원하는 재료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요리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재료가 부실해도 다음 단계에서 재료의 한계를 보완한다.

썰기, 다듬기가 부족하다고 요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양념이나 조리 과정에서 보완해 최종의 요리를 완성한다. 모든 요리는 항상 이런 식이다.

 

훌륭한 요리사는 수많은 변수에 대해 대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책에 나오는 대로 똑같이 하는데도 요리에 실패하는 이유는 

변수와 우연이라는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변수와 우연성은 지식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몸으로 경험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의 경제 원리 중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솔루션"보다 

"위기관리능력"을 더욱 높게 생각하는 것도 이 원리와 비슷하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운다. 일단 균형을 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책상머리에서 머리만 굴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1단계-균형 잡기, 2단계-앞으로 나가기.

하지만 이렇게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은 없다.

그냥 페달을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상책이다.

몇 번 넘어지고, 무릎이 깨어지면 어느새 균형을 

잡으면서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균형을 잡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사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움직이면 균형은 쉽게 잡힌다.

 

그림을 배우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면이 있다.

또한, 나는 그림을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 취미생과 전문가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취미생을 가르치나 전문가를 지향하는 사람을 가르치나 똑같다는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취미생을 가르치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미술 학원에서 초보자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연필 사용법, 종이 사용법, 선 사용법, 형태 잡는 법, 

명암 넣는 법 따위의 기본을 가르치는 데 3개월을 넘지 않는다.

그런 다음 곧바로 석고상을 그려보라고 한다. 초보자는 황당해 한다.

이제 고작 걸음마도 떼지 못한 사람에게 작품을 완성하라니.

 

원래 그림 그리기가 그렇다. 나도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런 식으로 가르친다.

미술 시간에서도 기초과정 3개월 만에 자화상 완성해 오라고 한다.

회원들은 다소 황당해 하지만 연필화 중급 5개월 

정도 되면 인물이고 풍경이고 혼자서 잘 그린다.

수채화 기초과정 2개월 정도 진행하고 중급 넘어가면 곧바로 작품에 들어간다.

그래도 회원들은 잘 그린다. 아니, 이런 방법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잘 그리는 것이다.

 

원리를 알고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것은 기본이나 초기 단계에서 사용한다.

일단은 전체 과정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 단계는 다음 단계를 전제하고 있다.

한 단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진행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의 단계가 조금 어설프더라도 계속 진도를 나간다.

한 단계가 어설프다고 몇 번씩 반복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 그림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양(量)보다는 질(質)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높은 질은 나오지 않는다.

운전면허시험을 잘 봤다고 운전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도로에서 운전 경험이 많은 사람이 운전을 잘하는 것이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은 옷을 잘 사고 코디를 잘하는 사람이다.

직접 물어봤다. 하는 말이 이렇다.

 

"처음에는 실패를 많이 했어요.

마음에 들어 옷을 샀는데 직접 입어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그냥 버렸어요. 패션에 관한 책도 참고하면서 직접 남대문이며 

동대문을 뒤지고 다녔지요. 고생 많았어요."

 

그림을 제법 그리는 사람들의 경우 어설픈 작품이 많은 것보다는 

신중하게 그려 좋은 작품을 창작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것이다.

질 좋은 작품은 수많은 습작 과정에서 태어나는 것이지 

한 방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초과정에서는 습작을 많이 하다가 고급반이 되면 

왠지 많이 그리면 촌스럽다고 느껴지기나 한 걸까?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과정에 대한 집착이 들어있다.

나름대로 효율성을 높이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정이 어설프면 결과도 어설프다고 생각한다.

어설픈 과정으로 어설픈 작품을 완성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나의 수준이 높은데 어설픈 결과가 나와서야 쓰겠는가.

일단 창작한 작품은 버릴 수도 없고 미치는 일이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실수나 실패를 은폐하려는 사춘기적 심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각 과정에 대한 충실성으로 이어진다.

앞의 과정이 완결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결국, 천재 의식이나 명작주의에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그림을 포기해야 한다.

 

원칙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중요하다.

그림을 가끔 그리는 것보다 완성을 많이 해보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다 보면 전체 과정을 이해한다.

창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보는 일이다.

전체 공정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전부를 알고 있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을 생각하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구도와 전체적인 얼개는 크게 잡는 것이 중요하다.

세세한 부분을 계획하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림 그리는 과정에는 수많은 붓질과 물감 섞기와 즉흥적 판단이 들어간다.

이걸 처음부터 모두 예상하고 그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 하더라도 그림에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착수하지는 않는다.

예측할 수 있고 완벽한 계획에 의해 그려진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밑그림은 그야말로 큰 얼개를 만드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밑그림은 그저 밑그림일 뿐이다.

밑그림 과정에서 완벽한 소묘를 하면 다음 단계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사실적인 작품을 위한 밑그림이 어설프면 형태나 명암을 잡는데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기에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표현은 힘들어진다.

그래서 형태나 명암의 흐름이 밑그림에 들어가는 것이다.

거꾸로 형태나 명암이 필요하지 않은 밑그림 과정은 최소한으로 그린다.

소묘나 밑그림 과정은 채색 과정에서 붓질, 

색상 따위와 수많은 즉흥성과 변수를 통해 그 역할이 완성된다.

 

작품 내용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머릿속의 계획은 큰 얼개를 잡는 데 만족해야 한다.

완벽한 계획이 잡혀있지 않는다고 해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완벽한 계획이 우선이 아니라 어설픈 계획이라도 

일단 그려봐야 자기 속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계획을 머리로 세우지 말고 몸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그 기본과 초심이 뭘까?

그것은 그림에 대한 사랑,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 

자기의 존재를 드높이고 세상과 소통하려는 열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출처]

misulb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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