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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소통이 잘 되는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이 베스트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자신의 전문성을 피력(?)해야 할 때는 대체 언제일까요?

 

 

 

[대답]

 

아 반가워요! 그런데 이런 심오한 질문이... 음... 대답이 쉽진 않지만 시도해 보겠습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 때도 있고, 또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때도 있죠.

이것은 개인적 기질 차이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 드러냄이 디자인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일을 할 때 먼저 감정을 드러내면 사실상 지는 겁니다.

물론 상대의 반응에 따라 다시 기회를 잡을 수도 있죠.

상대가 냉정하면 냉정할수록 불리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중요한 판단을 할 때 "5분 더 생각해보라."는 조언들을 많이 하죠.

그러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욱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적절한 지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5분"의 타이밍이 언제이냐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 촉발되는 수많은 선택과 판단의 상황,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들과 경험들, 그때마다 변화하는 우연한 상황 속에서 

결정되는 우리의 행동에 5분의 여유가 없습니다.

5분을 더 끌라는 말은 사실 무척 추상적입니다.

그러니 "5분을 더 생각하라."는 의미는 그냥 "한 번 더 생각해봐."라는 

정도의 조언으로 받아들이면 될듯합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이라는 말도 사실 추상적입니다.

"뭘 얼마나 더?"라는 질문이 따라오거든요.

또 이미 충분한 고려를 통해 한 직관적 행동에 "생각"을 더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습니다.

기질적으로 성격 급한 분들에게는 적절한 조언이겠지만, 

차분한 분에게는 뜬구름 잡는 조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의문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것이죠.

나는 이미 충분히 고려된 상황에서 전문가로서 

상대방에게 어떤 타이밍에 내 의견을 피력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해지는 것이죠.

더구나 디자이너라는 "을"의 입장에서는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요.

"갑"은 그냥 기질대로 행동해도 별로 상관없으니까요.

하지만 디자이너가 일을 망쳐버릴지 모른다는 

작은(?) 두려움을 갖고 있기에 "갑"도 함부로 행동하진 못합니다.

이게 전문가와 일하는 자본가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디자인"이라는 특수한 상태를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독특하게도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분야입니다.

많은 분야가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디자인도 "과정"이 중요할 것 같고, 

또 많은 사람이 과정을 강조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디자인은 과정보다 결과가 훨씬 중요합니다.

왜냐면 디자인은 대량생산을 전제로 한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와 어떤 하나의 디자인을 만들지만 

그것이 다 완성되는 순간 수많은 클론을 만들게 됩니다.

편집디자인의 경우 한번 계획된 디자인은 몇천 부, 몇만 부를 인쇄하게 되니까요.

즉 한 번이 한 번이 아닙니다.

저는 신문사에서 일하는데 한 번의 실수로 3만 부를 날린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점이 결과를 중요시하는 디자인 분야의 특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렸듯이 사람들은 대부분 디자인은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디자이너는 과정 중심적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자주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디자인을 맡긴 클라이언트는 결과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과정을 따지는 디자이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음... 계주 경기를 예를 들어보죠.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에게 바통을 넘겨받고 먼저 뜁니다.

디자이너는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기 위해 열심히 뜁니다. 하지만 힘이 듭니다.

다음 주자인 클라이언트는 바통을 기다리며 열심히 달리는 디자이너를 독려하죠.

"빨리 더 빨리!" 하면서요. 게다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렇게 디자이너가 기진맥진 바통을 다시 클라이언트에게 넘겨줍니다.

그때 클라이언트는 그 바통을 들고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바통"을 넘기는 것은 바로 디자이너의 결과인 최종 디자인을 의미합니다.

이때 클라이언트에게 이 최종 디자인은 다시 과정이 됩니다.

수천 개(?)의 디자인 클론을 만들어(대량생산) 자신의 계획이나 삶을 살아갑니다.

그의 삶이 디자인이라면 디자이너의 최종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에게는 삶의 과정 일부가 됩니다.

즉 디자이너에게 "전부"이자 "결과"인 디자인이 클라이언트에게는 "일부"이자 "과정"이 됩니다.

그래서 디자인에서 디자이너는 과정을, 클라이언트는 결과를 중요시합니다.

디자인이 다 끝나면 디자이너는 손 털지만, 클라이언트는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클라이언트는 자신의 과정을 소중히 하므로 디자이너의 결과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참 오묘하죠?! 인간은 본래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양적으로 결정되고 결과 중심적인 세상이라 

욕들 많이 하지만(자본주의의 특징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과정을 더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카페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대부분 인간관계와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결과를 중시하면 뭔가 비도덕적인 것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저는 이것을 "경멸"이라 표현하곤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짜증이 나고 비도덕적인 것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크게 보면 클라이언트는 다음에 달린 주자로서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디자인을 놓고 디자이너는 과정을 

클라이언트는 결과로 보기 때문에(사실은 이것도 과정이지만) 

둘은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고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를 경멸하게 됩니다.

헷갈리지 않죠?! 그런데 디자이너는 을이라 대놓고 경멸하지는 못합니다.ㅎㅎㅎ

이렇게 서로 같은 디자인을 보는 견해가 다르니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디자인이 늘 산으로 들로 가죠.

목적보다는 감정이 중요한 상황에 자꾸 놓이게 되고요.

"결국, 돈 주는 사람이 왕이구나..."라는 자괴감이 들면서 

비난의 화살은 자본주의적 구조와 클라이언트를 향합니다.

(공부 좀 한 복잡한 사람은 자본주의 구조를, 

단순히 경험이 많은 사람은 클라이언트를 욕합니다.)

 

우리는 이런 어린이 같은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는 "목숨을 건 도약"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망한다 해도 별문제가 없습니다.

짜증 나고 화가 나지만 다음에 잘하면 됩니다.

그러나 클라이언트는 디자인이 망하면 인생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한 돈이 날아가서 치명적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죠.

그래서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은 자존감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래서 디자인에 대한 태도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디자이너에게도 디자인은 생존의 문제이지만 경중을 따져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디자이너의 인격과 윤리를 강조합니다.

(사실 저는 잘 실천하진 못하지만요.ㅠㅠ;)

 

디자인과 비슷하게 결과가 중요한 분야가 정치입니다.

민주주의 제도에서도 선거 한번 잘못하면 그 결과가 참혹합니다.

때론 수많은 죽음, 수많은 희생을 만들기도 합니다.

독일의 히틀러와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모두 선거로 정당하게 뽑혔습니다.

정치는 악마의 수단인 "폭력"으로 천사의 "대의"를 실현하는 독특한 분야입니다.

결과가 아주 무섭습니다. 그래서 정치인은 늘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막스 베버가 말하듯이 정치에서 "열정"은 단순한 흥분이 아닙니다.

이런 비창조적 흥분은 큰 희생을 가져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정치에서 열정은 반드시 결과를 염두에 둔 "책임 있는 열정"이어야 합니다.

즉 정치인은 늘 결과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신념을 피력해야 합니다.

가끔 디자이너가 예술가적 기질을 무기로 덤비는 무모한 경우를 봅니다.

이런 태도는 경계해야 합니다. 예술가는 디자이너 모두 시각적 아름다움을 다루고 

때론 결과물도 비슷하지만,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다르고 일의 성격과 성향이 전혀 다릅니다.

 

예술품은 유일품을 추구하고, 디자인은 대량생산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예술보다는 정치에 더 가깝습니다.

예전에 박원순 시장이 자신은 "소셜 디자이너"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것이 훨씬 디자인, 디자이너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그는 시민운동가이며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디자인과 정치는 아주 유사한 직업윤리를 가지게 됩니다.

대량생산을 "폭력"에 비유한다면 "디자인은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치"입니다.

("정치"에 관한 내용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얇은! 책자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뒤쪽 부분에 정치가의 윤리가 나오는데... 저는 그것을 디자이너의 윤리로 읽곤 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디자이너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피력할 때는 

"처음 일이 시작할 때"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입니다.

그 중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말"보다는 "손"으로 피력하는 편이 좋습니다.

디자이너의 "손"은 곧 디자이너의 "생각"이니까요.

더구나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의 손을 빌린 것이지 입을 빌린 게 아니거든요.

때론 디자이너가 기획에 관여하지만 디자이너는 이미 만들어진 기획에 

뒤늦게 참여한다는 점에서 기획을 주도해 나가기보다는 기획이 더 잘되도록 

조언하는 조력자 역할 정도로 보는 것이 적합합니다.

이점을 확실히 염두에 두고 디자인에 임해야 합니다.

(클라이언트에 의해 의뢰된 작업에서요.)

 

그렇다고 입 닥치고 작업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입은 조심스레 잘 사용해야 합니다.

소통은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을 올곧이 전달하기란 불가능하죠.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 의사소통이 아주 중요합니다.

디자이너는 자기 생각을 피력하기보다는 

먼저 클라이언트의 의도와 생각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합니다.

상대에게 다가가는 질문, 구체적인 의도를 끌어내는 질문을 해서 

최초에 생각을 읽고 목적을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돈은 클라이언트가 주지만 키는 경험을 가진 디자이너가 쥐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를 찾은 것은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것이니까요.

미안해서 돈을 들고 온 것이죠.

 

최초의 디자인 상황에서 클라이언트는 의뢰자이고, 디자이너는 전문가입니다.

즉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라는 어린아이를 안내하는 어른입니다.

그러니 디자이너는 어른다워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교양" 혹은 "가치관"이라고 표현합니다.

방향이 어느 정도 결정되고 디자인이 시작되면 상황은 바뀝니다.

"의도"의 방향키를 쥔 클라이언트가 어른이 되고, 

디자이너는 의도를 반영하는 어린아이가 되죠.

이때 디자이너의 의견은 입이 아닌 손이 대변합니다.

 

디자이너는 어린아이의 역할이 힘들었지만 일이 모두 끝났습니다.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클라이언트는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가 고집을 피운 탓에 

디자이너는 결과가 맘에 안 들었습니다.

게다가 클라이언트도 사업이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가 아닌 자신을 자책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이때 디자이너는 다시 어른의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하고 의견을 나눌 기회가 오죠.

(물론 반대의 상황도 허다합니다. 디자이너가 반대한 디자인이 성공해 디자이너가 

어리둥절해지고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를 더욱 불신하게 되죠.)

 

만약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를 다시 찾아 실패한 원인을 

겸손하게 물어온다면 친절하고 교양 있게 문제점을 상담해주면 됩니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 서로 신뢰가 쌓입니다.

비로소 진정한 파트너 관계로 올라서는 것이죠.

그러면 서로 서슴없이(그러나 조심스럽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신뢰하니까요.^^

 

처음 만나면 어색하고 서먹하고 서로를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먼저 다가온 클라이언트를 따뜻하게 맞아줘야죠.

이것이 클라이언트의 증여에 대한 디자이너의 답례입니다.

그리고 결과가 조급한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잘 배려해 디자이너는 자신의 손을 증여합니다.

클라이언트는 계약된 대로 돈으로 답례합니다.

하지만 디자인 과정에 따라 클라이언트가 돈을 아깝게 여길 수도 있고, 

아깝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디자이너의 태도와 결과에 달려있습니다.

 

결과가 안 좋더라도 그것이 디자이너가 아닌 

클라이언트의 고집 때문이라면 클라이언트는 다시 디자이너를 찾아 의견을 묻게 됩니다.

이것이 디자이너가 디자인 과정에서 증여한 것에 대한 진정한 답례입니다.

사실 "돈"은 이미 최초 계약 단계에서 끝난 상황이기에 답례로서 작용하진 않습니다.

그냥 이것이 답례니 하면서... 그렇게 여겨질 뿐이죠.

이렇게 진정한 인간적 증여와 답례가 겹겹이 쌓이면 신뢰가 됩니다.

신뢰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형성되는 독특한 감정입니다.

그렇게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는 끈끈한 파트너, 공동체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질문하신 내용에 대한 제 대답입니다.

다소 긴 내용이라 헷갈리진 않으셨을지 걱정입니다.

또 궁금함이 해소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디자이너의 책임과 역할 그리고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출처]

www.designerschool.net/readings/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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