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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실한 디자인들을 감내하며 좌절과 난감함을 맛보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유독 여자 화장실에만 길게 늘어선 줄에 진저리 난 여자들, 

공공장소에서 기저귀 교환대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 

직장에서 맘 편히 유축할 곳이 없어 고생하는 아기 엄마들을 위해.

장난감과 가구에 숨어 있는 건강과 안전상의 유해성을 걱정하는 부모들과 

딱딱한 플라스틱 포장을 억지로 뜯다가 손을 다쳤던 사람들과 

실내 쇼핑몰 같은 창문 없는 업장에 갇혀 일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나아가 젠더와 연령과 신체 치수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유용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알고 싶고, 

디자인으로 인한 재앙을 막고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은 모두를 위해 썼다.

 

 

 

패션, 제품, 건물 디자인은 매일 우리의 삶을 놀랍고 강력한 방식으로 빚고 결정한다.

우리가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들은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모두 부단히 의문과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더는 젠더, 연령, 체형 편향을 통해 소비자 중 특정 집단에게만 

편향된 호의를 베풀고 불공평한 권한을 부여하는 디자인들을 참고 살지 말아야 한다.

 

 

 

잘된 디자인은 우리에게 영감과 기쁨과 권한을 부여한다.

직접 대면하든 온라인으로 접하든 눈길을 끄는 제품, 이채로운 패션, 

아름답게 설계된 공간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디자인에 대한 부단한 관심,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세심함은 

구글의 검색엔진, 웹사이트, 업무공간, 나아가 라이프스타일을 특징짓는 차별점이었다.

하지만 디자인에는 일부 사람들을 나머지 사람들과 차별화된 지위에 놓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편향들이 은밀하게 깔려 있다.

이제 이런 것들을 인지하고 바로잡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구축환경(built environment, 자연에 인위적 조성을 가해 만든 환경)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제품 중에는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편향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우리 대부분은 공간과 장소와 물건의 디자인을 당연시한다.

따라서 이용에 어려움을 겪으면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디자인은 우리 삶의 질에 근본적이고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초대형 공간부터 초소형 공간, 가장 공개적인 장소부터 가장 개인적인 장소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의 미묘하고 교묘한 차이들이 인간 불평등을 영구화한다.

 

 

 

공간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와 동떨어진 과학적 사물이 아니다.

공간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외적 환경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들로 우리의 내적 상태를 만든다.

 

 

 

삶을 바꾸라! 사회를 바꾸라! 적절한 공간을 창조하지 않고서는 

이 모든 생각들이 완전히 의미를 잃고 만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새로운 공간을 요구하고,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낳는다.

 

 

 

디자이너라면 디자인하는 모든 제품에서 미학과 기능과 

인체공학을 좇는 것도 중요하지만 젠더 평등에 주목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 평등 디자인의 잠재력은 아직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다.

바꿔 말하면 고객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엄청난 부가가치를 

안겨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영역이다.

 

 

 

디자이너들에게 최소 기준을 훌쩍 뛰어넘을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특정 젠더, 연령대, 신체 치수를 차별하지 않고, 

갈수록 다양해지는 소비자 집단과 이용자 집단에 효과적으로 부응하고, 

안전하고 품질 높은 제품과 건물을 요구해야 한다.

 

 

 

전 세계 수많은 부모가 아이 기저귀를 가느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을 치른다.

이들은 종종 불편하고 때로 위험한 장소들에서, 

때로는 한번에 두 아이 이상을 단속해가며 사투를 벌인다.

기저귀 교환대를 여자 화장실뿐 아니라 모든 화장실에 있어야 한다.

기저귀 교환대 설치는 진보의 신호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아직도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 공중 화장실이 허다하다.

또한, 여자 화장실에는 있어도 남자 화장실에는 없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성차별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자라고 직장에서 늙는다.

우리는 인생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낸다.

하지만 대부분 교실과 직장의 물리적 환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학교와 직장 설계에 도사린 젠더, 연령, 체형 편향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여파는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패션, 제품, 건물 디자인의 세계에 지각 변동이 필요한 때다.

사실 이미 한참 전에 왔어야 할 변화다.

(중략) "우리의 정책은 광범위한 부분에서 아직도 이상화된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 세계의 일반적인 가족은 평생 해로하는 남녀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되고,

남자는 전업 생계 부양자이고, 여자는 전업주부이자 독박 육아 담당자다."

디자인 분야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젠더, 연령, 

체형 면에서 점점 더 다각화됨에 따라 이제 그 틀을 깰 때가 됐다.

우리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제품, 공간, 장소의 디자인을 개선할 수 있다.

젠더, 연령, 체형 편향을 줄이거나 최소화하거나 

없애는 디자인이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한 사회를 만든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인간의 다양성에 더욱 훌륭히 대응하는 

안전하고 건강한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디자인"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따돌리는 

패션, 제품, 건물을 우리의 미래에서 퇴출할 수 있다.

 

 

 

우리의 권한을 알고 살자. 디자인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지만 디자인에는 우리의 삶을 변질시킬 힘도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매일 디자인에 의해 차별당할 수도 우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디자인에 의해 정의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디자인은 변화를 만들지 않는다. 변화는 사람이 만든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장착한다면 변화는 우리 손에 있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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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젠더 및 여성학과 교수이자 

조경학과 교수인 캐스린 H. 앤서니라는 분이 쓴 디자인 관련 책으로서 

패션, 제품, 건축 디자인 전반에 있는 여러 불평등한 디자인 사례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편집', '제품', '컬러', 'good design'까지 

'좋아 보이는 것들' 시리즈는 네 편 정도 읽었는데 

이번에는 다섯 번째로 '배신' 편을 읽게 되었다.

솔직히 한 시리즈를 이렇게 다섯 편이나 읽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않았었다.;;;

 

책은 의류의 치수 문제부터 시작해 하이힐의 문제점, 속옷, 생리용품, 어린이용품, 

연단, 대중교통, 화장실 같은 건축과 상업시설의 문제, 의료 시스템 등등 일상 속에서 

접하게 되는 정말 다양한 디자인 문제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나 화장실 문제는 저자가 미국 의회에서 화장실 평등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분이기에 다른 부분보다 분량이 좀 더 많은 편이다.

여성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며, 노인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닌, 

키가 아주 작거나, 키가 아주 큰 것도 아닌, 평범한 성인 남성이기에 

저자가 책을 통해 제기한 여러 디자인 문제들을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시야를 얻게 되었다.

참고로 책 본문에는 대한민국 관련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하나는 서울지하철의 훌륭한 시스템에 대해, 

또 하나는 젠더 친화적인 정책을 펼친 서울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가 순간 반가움을 느꼈다는.

 

단점도 있는데 미국 국내의 디자인 문제들을 다루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미식축구용 헬멧 이야기라든지 미국 기업, 미국 산업, 

미국 도시, 미국 생활 등 미국에 관련한 상식이 부족하면 읽기가 불편한 편이다.

또 패션, 제품, 건축 디자인 관련한 상식이 부족해도 읽기 불편한 책이다.

(책에 소개된 "클램셸(Clam Shell) 포장"이 뭔지 몰라서 검색을 통해 알아봤다는.;;;)

그래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대한민국 국내의 디자인 문제 사례들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책이 하나 더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 곳곳에 "출처"를 소개하는 "주석"이 많이 달려있는데 

이 출처가 번역하기 귀찮았는지 전부 영어로 실려있는 데다 출처도 

책 끝 부분에 모두 실려있어 책 본문에 소개된 나쁜 디자인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편집은 나쁜 디자인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에 실린 사진 자료량도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소소한 단점이 있지만 색다른 정보와 시야를 얻고 싶다면 책을 읽어보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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