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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를 그리는 일이란, 생명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대상을 그리는 데에는 "생명" 자체에 대한 고찰이 필수라는 얘깁니다.

 

 

그림은 "표현"의 일종이고, 우리가 모르는 사실에 대해 무엇인가 표현하는 행위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저 표면적인 

해부학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생동감"을 표현하려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뼈라는 놈이 워낙 오묘하게 생겨 먹어서 그 생김새가 선뜻 눈에 잘 안 들어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그 생김새의 "이유"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알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그 모습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거든요.

 

 

"환경"은 생물체의 생김새를 결정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냥 "우연히" 또는 "심심해서" 그렇게 생기게 된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죠.

 

 

아무리 복잡한 구조의 기계라 하더라도 작동원리를 파악하면 쉬워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작동원리는 어떤 "필요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비로소 구조가 설계된다는 말이죠.

 

 

어떤 특정한 대상을 보고 따라 그리는 일은 그 대상의 외형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반복 필기와 같은 효과가 있거든요.

다시 말해 드로잉이라는 행위는 단순히 "기록"의 의미를 넘어 

특정 지식을 확고히 기억하기 위한 인식 도구의 역할도 한다는 거죠.

 

 

얼굴이 캐릭터의 "생김새"를 결정한다면, 손은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입니다.

좀 냉정하게 얘기하면, 만화가가 캐릭터의 얼굴을 못생기게 

그리는 건 괜찮아도, "손"을 못 그리면 많이 불리해진다는 말입니다.

표현의 폭이 확 줄어들어 버리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손의 구조를 줄줄 외웠다고 해도, 

그 지식이 손을 더 잘 그리는 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건 아닙니다.

손의 해부학적 구조를 다 알고 있는 해부학자라고 해서 모두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아닌 듯이요.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 중요한 건 대상에 대한 "관심"이지요.

어떤 대상이든 그 대상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 다각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표현의 여지 또한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한마디로, 어떤 대상에 관해 관심을 두고 구조적으로 이해하면, 

그를 표현하는 일이 재미있어진다는 얘깁니다.

재미있으면 반복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아무리 많은 요령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림이란 결국 그리는 사람의 

시선을 반영하는 결과물이니만큼, 평소에 주변의 여러 가지 대상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과 관심을 두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자주 자신의 눈에 띄는 것을 더 익숙하게 여기고, 

익숙한 대상에게서 안정과 편안함을 느끼며, 그 상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은 언제나 모든 생명체가 갈망하는 요람이죠.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의식의 흐름을 "아름다움"으로 규정합니다.

아름다움이란 단순한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살아남아 자주 눈에 띄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결국 "생존"으로 귀결되죠.

인류는 멸망하는 그 날까지, 아마도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할 것입니다.

다만 그 대상과 가치는 생존력의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좀 더 다양한 아름다움을 알아보기 위한 안목을 키우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발이란 그냥 단순한 "받침대"가 아니라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수천, 수만 가지 자세 경우의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내어 

손이 마음 놓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만든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고, 

결과적으로 인류의 문명뿐 아니라 "예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단순화"라고 하면 실사처럼 묘사한 자세한 그림에 비해 다소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많죠.

하지만 어떤 대상을 단순화한다는 것은 실제에 대한 이해가 앞서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흔히 만화나 일러스트에서 보이는 

"발"의 표현들을 자세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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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석정현(필명 석가) 님이 쓴 인체 해부학 관련 책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사람"을 잘 그려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미술 기법 책이지만, 그림 그리기가 아닌 인체 해부학에 대해서만 

공부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진화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과학 이야기들과 신체의 부위별로 뼈의 모습, 근육의 모습들을 

아주 자세히 그리고 친절하고 재미있게 설명하며 부위별 뼈와 근육 그리기 또한 

세세하게 잘 설명해 주기에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고 있는 분들이나 그림 그리기를 

이제 막 시작한 분들 모두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아주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진화론)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은 일부 책 내용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으며, 

책 내용이 워낙 방대하여 책이 상당히 두껍기에 편하게 "독서"를 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책 두께가 무려 4cm 정도 된다. 책 제목을 "해부학 노트"가 아니라 

"해부학 사전"이라고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집에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독서대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으면 "목" 또는 "팔"이 아파서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책의 방대함 때문에 책의 유익함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에 따라서는 책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다.;;;

 

그리고 핏줄(정맥) 관련 부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는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기도.

 

그리고 책에는 이 책에 대한 추천사도 수록되어 있는데 

추천사를 남긴 분 중에 국내 미투 운동을 통해 성추행 논란이 불거졌던 

만화가 "박재동"과 사진작가 "ROTTA(필명 로타)"가 있다.

책이 발간된 이후에 발생한 일인지라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아무튼, 너무나도 훌륭하고 유익한 책이기에 인체 해부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책을 읽어보거나 구매하시길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독서대도 같이 구매하시길 권장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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