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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림을 배우는 사람들은 연필화 기본기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수채화를 배우고, 유화나 아크릴화, 파스텔화 따위를 배우고 싶어 한다.

다양한 매체를 다루고 싶어 하고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 심지어는 추상화까지 그려야 한다고 여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알아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어린 학생들은 대부분 이런 형식으로 그림을 배운다.

하지만 미술을 제외한 여타의 예체능 분야는 

어린 나이 때부터 하나의 전공을 정해서 연습을 한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에 속하는 

모든 악기를 배우고 나서 하나를 전공할 수가 있는가?

운동선수가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따위를 모두 해 본 다음에 

하나의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를 보았는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 소설, 수필, 시 따위를 모두 배우고 하나를 정하는가?

건축하는 사람이 교량, 아파트, 공공건물, 토목까지 

섭렵한 다음에 원하는 전문분야를 다루는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나 음악가, 혹은 김연아나 박지성 같은 운동선수, 

피카소, 신윤복 같은 화가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한길을 팠다.

이것저것을 배우며 두리번거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나의 세부적인 전공을 결정하여 연습하는 것이 기능 완성에 이르는 훨씬 빠른 길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전공을 어떻게 정해집니까?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 선택해 준 전공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양하게 배운 다음 선택해도 충분한 시간이 있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너무 구체적으로 배우면 영역이 좁아져서 

다양한 세계를 모를 수도 있잖아요."

 

말은 그럴싸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질문이다.

 

재능보다는 관심이다.

어린아이가 관심을 보이고 몸을 움직여 해 보고자 하는 것이 재능보다 훨씬 중요하다.

실제 미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관심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는 화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모나 교사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어린 학생들이 관심을 두는 부분을 80% 정도는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전공은 어른들이 선택해 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실적이라는 말은 열대지방에서 김연아 같은 피겨선수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또한, 아이가 크리켓이라는 영국식 야구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당연히 미국식 야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음악을 처음 접한 선생이 만약 바이올린을 전공했다면 

그 선생에게 배우는 학생은 바이올린을 전공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억울하다고?

 

그럼 하필 분단된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그렇고 그런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을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그럭저럭 사는 사람이 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사람은 주어진 환경과 자원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이것은 그냥 운명이고 환경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인생은 길다. 늦게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한 경우이다. 특별한 경우를 일반화시키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거꾸로, 사기를 당하는 대부분 사람은 일반적인 것을 특별나다고 여기는 데서 걸려든다.

나이가 들면 인생이 복잡해진다. 의무사항도 많고 일도 많아진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상상력이 고갈된다.

상상하는 놀이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20세 전에 형성된 알맹이를 가지고 평생 풀어내며 창작한다.

그러기에 빠를수록 예술적 상상력은 풍성하기 마련이다.

 

또한, 몸으로 하는 전문적인 기능은 육체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생물학적인 한계가 빨리 온다는 말이다.

몸에 의한 기술적인 최고조는 대략 30~40세 전후이다.

40세 이후는 기술적인 발전은 거의 멈추고 

숙련에 의한 세련미와 예술적 넓이를 확장하는 시기이다.

한 분야를 시작해 약 20년 정도를 숙련하면 기술적으로 가장 전성기가 된다.

청소년기에 예술을 시작한다면 30~40세 전후로 기술적인 전성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러나 25~30세 전후로 예술을 시작한다면 

기술적 완성도를 보지 못하고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예술 분야는 반드시 육체적인 기능을 동반한다.

상상이나 이미지는 몸을 써 매체라는 도구를 통해 구현된다.

예술 분야는 워낙 전문성이 높아서 모든 것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술실기 박사는 없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실기에 정통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저것 조금씩 잘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초등학교 교육에나 통할 수 있지 전문가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한 사람이 평생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인구의 0.1%도 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두 개의 세계를 완성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유화를 매체로 사용해 인물화를 완성한 사람이 

같은 매체로 풍경화를 시도해서 완성하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바이올린을 완성하고 난 후 피아노를 쳐서 자신의 세계를 완성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더 쉽게는 미국의 전설적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농구를 완성했지만 

은퇴 이후 야심 차게 시작한 골프에서 참담하게 실패한 실화도 있다.

지금은 다시 농구계로 돌아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모든 예술가는 그 분야의 "박사"이다.

넓이를 중심으로 깊이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중심으로 

예술세계를 넓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훨씬 효율적이다.

깊이를 더해서 극한까지 갔다면 결국 전부와 통하는 것이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미래를 예측해 보자.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은퇴하는 나이가 30세 전후로 보면, 

다른 나라 혹은 국내 리그에서 몇 년을 더 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난 선수 생활은 더 나은 전성기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돈을 벌거나 인맥관리 차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국내 프로리그에서 몇 년을 뛰면서 다양한 체육인들, 

정치인, 경제인들과 인맥을 만들고 화려하게 은퇴를 할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유소년 축구교실도 만들고, 

영국 프로축구팀을 초청해 국내 친선경기도 기획할 것이다.

더 나아가 주요 축구경기의 해설자로 나오고, 

무슨 홍보대사 역할도 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밀 것이다.

이런 경험을 쌓아 프로팀의 코치를 맡거나 축구협회의 기술이사 직함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피겨선수 김연아나 골프선수 박세리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예술 분야라고 다를까.

태백산맥과 아리랑이라는 소설을 쓴 조정래 선생은 

평생 소설을 쓰겠지만, 그것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문인협회 일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고 후학을 기르고 

다른 예술인들과 다양한 교류를 통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김지하, 황석영 선생 또한 마찬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른 시일 안에 자신의 세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림을 배우는 어린 학생들이 미술 학원에서 

이것저것을 배우는 것은 그 학생의 재능을 모르기 때문이다.

재능을 모르기 때문에 이것저것을 해 본 다음, 

가장 강점을 보이는 부분을 전공으로 삼는 것이다.

교사나 부모가 해야 할 일을 어린 학생 자신에게 떠맡기는 꼴이다.

어른의 체계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확률을 별로 없다.

원래 예술 따위의 극한적인 전문분야는 독학 자체가 불가능하다.

독학할 수 있는 분야는 그냥 달달 외우는 검정고시나 공무원 고시밖에 없다.

 

만약 내가 어렸을 때, 조금만 더 훌륭한 선생이나 

어른을 만나 배웠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풍성한 예술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별것 아닌 문제를 풀기 위해 몇 년을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선배나 선생들이 몇 마디만 조언해 주었다면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이유는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미술 학원의 이윤추구 때문이다.

사설 미술 학원은 미술교육이 목적이 아니라 영리 추구가 목적이다.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미술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영리를 추구하다 보면 미술교육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먼저는 좋은 선생을 초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선생은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을 가르치기 어려워 경제적 손실이 아주 크다.

또한, 이것저것을 배우면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수강료를 많이 받을 수 있다.

 

30세 전후로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은 이미 늦었다.

그런데도 주로 이 정도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미술 시간 회원들이다.

이들에게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방법과 다양한 기법을 가르치는 일은 

그냥 취미활동으로 몇 작품 그리다가 그만두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기본기를 빠르게 익히고 기본적인 조형 기법을 중심으로 

매체를 확정하고 풍경이나 인물, 정물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결정되었다면 풍경화 안에도 도시 풍경, 농촌 풍경, 

숲 속이나 나무, 집 따위의 구체적인 소재를 결정하고 그에 맞는 기법도 한정시켜야 한다.

인물화를 그린다면 모든 사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연령대에 맞는 소재와 

손에 잡히는 주제와 익숙한 기법을 확정해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을 정해놓은 다음 숙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숙련하는 과정에서 서로 연계하며 정해지는 것이다.

일단 매체와 기법과 구도와 소재와 주제가 습작 과정을 통해 정해지고 

전시를 통해 확신이 서면 곁눈질 하지 말고 오로지 한길을 파야 한다.

 

그림 공부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좁혀야 한다.

다양한 매체를 안다고 해도 결국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수용된다.

그림 그리기의 모든 기법은 기본기에 추상적으로 녹아있다.

자신의 조형세계를 만드는데 여러 기법은 불필요하다.

사물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기술을 가질 필요도 없고, 

완벽한 명암이나 형태, 혹은 모든 색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서양 음식 조리법을 김치찌개에 

접목할 것이 아니라 그냥 김치찌개를 잘 끓이면 된다.

창작활동은 돈을 버는 행위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것저것 잘하는 사람들과 놀지 마라.

이들은 몸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사람을 약 올려 

돈벌이하거나 폼만 잡는 잡놈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전문가는 전문가를 금방 알아본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 사람은 척 보면 안다.

 

 

 

한길에 매진하다 보면 자신만의 양식과 틀이 완성된다.

군더더기와 필요 없는 요소는 빠지고 핵심만 남으면서 세련미가 더해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의 작품을 좋아할 것이라는 연예인 같은 생각은 버려라.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슈퍼맨 같은 생각도 필요 없다.

내 작품과 나의 세계를 알아주는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10명을 감동하게 하면 나아가 10만 명을 감동하게 할 수 있다.

미술적, 조형적으로 완성된 세계를 가지고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나의 세계와 사람들의 세계는 결국 하나다.

 

 

 

[출처]

misulb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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