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인생이 망하는 것은 매우 쉽다.

도시에 살고 있다면 집 밖으로 나가서 눈을 감고 몇 분 정도만 앞으로 걸어가면 된다.

분명히 교통사고를 당할 것이다.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갑작스럽게 부상을 입고 드러눕게 되면 인생은 그만큼 더 불편해질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조금씩 망해 갈 것이다.

꼬박꼬박 출석을 해야 하는 학생이거나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일상부터가 헝클어진다.

그렇지만 인생이 흥하기란 아주 어렵다. 행복이 좋은 것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만큼 귀하기 때문 아닌가 싶을 정도다.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신기루로 피어오른 궁전 건물에서 막힌 배관을 찾아 뚫는 일에 가깝다.

기준을 한껏 낮추고 작은 일에도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 보려고 

마음먹고 또 마음먹어도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사는 내내 행복을 느끼기란 어렵기 마련이다.

겨우 일이 잘 풀려 나가나 싶은데 갑자기 몸 한군데가 

이상해지는 바람에 큰 병에 걸리는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고, 

괜찮게 일상을 보내는 것 같지만 거대한 빚을 지고 있어서 

빚만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만사에 문제가 없는 것 같다가도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이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아닌 밤중에 도둑이 들었다가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내 얼굴 앞에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

행복으로 가는 사다리는 수백 개의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그중 하나만 망가져 버려도 사다리는 쓰러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6년 이야기산업 실태조사>라는 

자료에 따르면 웹소설 작가의 평균 수입은 1,341만 원이다.

고용정보원이 공개한 <2015 한국의 직업정보>라는 자료에서 

소설가는 가장 돈을 못 버는 직업 50가지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 명단에는 영화 촬영장의 엑스트라, 수녀 등의 직업이 소설가, 시인과 함께 실려 있다.

그러니 작가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일로 밥값을 벌면서 

어떻게든 다음에 나오는 책은 좀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버텨야 한다.

끊임없이 동전을 슬롯머신에 집어넣으며 

잭팟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도박 중독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중략)

아무리 무명작가라 하더라도 무작정 헐값에 글을 파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글 써서는 쌀 살 돈도 못 모은다.

나는 부업을 하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으니 누가 5백 원만 준다고 해도 

원고지 4백 매짜리 중편 소설을 쓰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싼값에 일을 하면 출판사는 싼값에 받을 수 있는 글만 사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돈을 벌어서 살림에 보태야 하는 다른 작가에게도 피해가 간다.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고료가 정해진다면 이번에는 내 단골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똑같은 세탁소가 둘 있는데 같은 돈을 받는다면 내 가게에만 손님이 올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미 명망이 높거나 출판계 인맥이 두터운 작가를 찾는 곳은 많아지겠지만 

평판도 높지 않고 친분 관계도 적은 작가는 글을 팔아 성장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내가 몇 년 전부터 세운 비법을 공개하자면, 

마감 기일을 꼬박꼬박 잘 지키는 작가가 되자는 것이다.

(중략) 글을 쓰는 양과 속도, 얼마나 꾸준히 작업을 해야 하느냐를 

계속 가늠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살아 나갈지 

차근차근 준비하며 성실히 작업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망한 식당 하나만 눈에 뜨여도 이야깃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간판이나 가게 겉모양을 보며 왜 망했는지,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 옆 가게와는 친하게 지냈을지, 

혹은 무슨 원한을 맺었을지 상상해 본다.

그러다가 괜찮은 이야깃거리가 떠오르면 메모한다.

이걸 글로 옮기면 실제로 맞닥뜨린 생생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하기도 쉽고 묘사도 더 자세해진다.

꼭 어딘가에 도착해야만 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아니다.

버스나 기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본 풍경 중에도 이야깃거리는 많다.

 

 

어지간하면 편집자가 처음부터 작가의 팬일 때가 좋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맨 먼저 읽게 되니 편집자 입장에서 그나마 일하는 재미가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자신이 책으로 만들었다는 보람도 조금은 얻을 테니까.

누군가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상이나 표현의 개성을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작가가 좋아하는 대목과 편집자가 좋아하는 대목이 전체적으로 맞아 들게 된다.

 

 

얼마 전 라디오 방송에 나갔다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는 진행자로부터 

"곽재식 작가도 이제 다른 일은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살아 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이문열 작가도 먹고살기 어려울까 봐 지방 신문사의 기자로 한동안 일했는데, 

주변의 평론가나 문인들이 기자 일 접고 소설만 쓰라고 

여러 차례 말하는 동안 그렇게 버텼다더라."고 했다.

돈을 아주 잘 벌 작가조차도 생계가 두려운 마음은 있기 마련이니 

과감하게 두려움을 떨치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교훈은 많은 돈을 번 

이문열 작가조차도 마지막 순간까지 생계 걱정을 하며 직장을 꾸준히 다니려고 했다는 것이다.

꼭 회사를 다니지 않더라도,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든, 

건설현장에서 벽돌을 나르든, 어떻게든 생계를 버텨내야 한다.

그런 것이 수없이 많은 작가들의 삶이다.

 

 

위대한 작가가 훌륭한 발상과 깊은 성찰, 폭발하는 성실성으로 쓴 

글은 마침 그 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어울려서 위대해진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훌륭한 발상이나 깊은 성찰을 하기란 쉽지 않고, 

그렇게 써낸 글이 사회에 딱 어울리기도 어렵다.

대신 그보다 한참 모자란 작가가 어떻게 그럭저럭 봐 줄 만한 

글을 짜내고 완성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와닿을 수도 있다.

새로운 컴퓨터 게임을 배울 때 프로게이머 김세연 선수처럼 

경이로운 달인에게 배우는 것보다도, 얼마 전에 게임을 시작한 

친구에게 배우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작가가 되어도 좋다.

단지 멋있어 보여서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달리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 싶다.

작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삶이 갑자기 멋있어지진 않으니까.

멋진 글을 쓰는 것만으로 한순간에 성공할 수 있는 건 조선 시대 중기까지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것도 공무원 임용 시험인 과거에서 시를 짓는 재주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있었던 것뿐이다.

내 생각에 현대 작가 중에서 돈을 잘 버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글에 담은 사상으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작가도 극소수다.

보통의 작가가 그렇게 살기란 어렵다.

새로운 세대의 머릿속에 사상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유튜브에서 웃긴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들이고, 

돈을 잘 번 것은 비트코인 초기에 치고 빠진 사람들이다.

물론 소설 한 편의 성공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작가도 있고,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생각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든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같은 말을 유행시킨 작가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하고많은 작가들 중에 그렇게 되는 사람은 너무나 적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뚜렷한 방법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즉 작가가 된다고 자동으로 대단한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다 보면 누가 먼저 책을 낸다거나, 

누가 먼저 잡지에 글이 실린다거나 하는 일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수가 있는데, 

10미터만 떨어져서 보면 참으로 무의미한 경쟁이다.

"너는 아직도 글 쓰는 연습을 하고 있는 작가 지망생일 뿐이지만, 

나는 글을 써서 오늘 책을 냈으니 이제 진짜 작가다."라고 자랑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우리 할머니가 너네 할머니보다 세 살 더 많다고 자랑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전혀 의미가 없진 않겠지만 딱히 큰 가치는 없는 말이다.

"나도 내 책을 냈는데 너는 아직도 책 한 권 못 냈지."라는 속내를 암시하며 

거들먹거리는 경쟁자가 있다면 그냥 한심한 인간으로 생각하면 된다.

일부러 신경 쓰며 저주할 필요조차 없다.

 

 

작가가 되었을 때의 장점은, 내가 쓴 글을 그래도 몇 명가량은 

진지하게 읽을 테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가가 아닌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정도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작가가 되면 멋있겠지."라는 환상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뭔가 보여 주고 싶은 내용을 품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중략) 작가가 되기만 하면 온 사회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저절로 생기고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삶을 살 권리가 주어진다는 생각에 몰두하다가 

막상 일이 잘 안 풀리니 절망해서 술독에 빠지기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작가로 활동한다는 느낌이 건강에도 낫다고 본다.

 

 

오늘의 요점은 많은 작가들이 계속 땀흘려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신이 나서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욕이나 성실함도 결국은 주어진 처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자상한 피아노 교사에게 음악을 배워 한 곡을 연주할 때마다 

주위에서 "정말 아름답다."고 칭찬을 듣는 사람이 음악을 연습하는 것과, 

하루 종일 생계를 위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잠깐 짬을 내어 몰래 

하모니카 연습을 하면 주변에서 "잠자는데 시끄럽게 한다."고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 음악에 의욕을 갖게 되는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좋은 환경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한 발 한 발 전진할 때마다 

칭찬을 듣는 사람이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과, 

힘겨운 환경에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해 봐야 성과도 없고 

욕이나 먹는 사람의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면 곤란하다.

 

 

나는 일전에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독자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참 잘됐다."고 느끼는 소설을 쓰고 싶다.

왜냐하면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참 잘됐다."고 생각해 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학창시절부터 오래 사귄 친한 친구라거나 우애 좋게 지낸 형제자매 정도가 아니면, 

그저 좋은 일이라고 해서 바로 "참 잘됐다."는 기분을 느끼며 같이 좋아하기란 어렵다.

심지어 가족의 성공에도 열등감을 느낄 수 있고, 

여태껏 잘 지내온 친구가 성공하고 나니 미워 보이더라는 일도 있다.

그런데 꾸며 낸 이야기 속 인물이 좋은 일을 겪을 때 독자가 

"참 잘됐다."고 느끼게 해 주는 글이 있다면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 않겠나.

인물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끝에 마침내 오래도록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쓸 수도 있을 것이고, 

주인공을 계속해서 갑갑하게 하던 것을 산산히 깨어 버리는 결말도 생각해 본다.

"참 잘됐다."는 느낌을 전해 주기 위한 괜찮은 방법들을 앞으로 좀 더 많이 궁리해 보고 싶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

 

 

이 책은 화학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화학자이자 소설가인 

곽재식이란 분이 쓴 작가로서의 자기 생각과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기에 아는 소설가도 거의 없는지라 

곽재식이란 작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음에도 이 책을 읽는데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울고 있는 고양이 표정이 인상적이었던 책 표지와 더불어 

책 제목만 보고 읽게 된 책이라 처음에는 창작의 고통에 빠진 작가들을 위한 

소위 말하는 "힐링책(?)"처럼 보였는데 그런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예상보다 많지 않은 편이고 

그렇다고 기술적으로 작법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라서 애매한 성격의 책이기에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책 본문에서도 작가가 "작법"에 관한 내용을 원한다면 자신이 쓴 또 다른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를 추천했다.;;

 

그래도 위에 언급했듯이 저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도 읽는 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무난하게 쓰인 책이며 "창작"을 바탕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공감되는 내용도 꽤 있고 

자신이 작가지망생이거나 작가의 삶과 생각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728x90
반응형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0) 2020.06.08
디자이너 회사생활 백서  (0) 2020.05.20
글쓰기 좋은 질문 642  (0) 2020.05.08
리더십 훈련  (0) 2019.10.31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0) 2019.09.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