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만화를 전공하는 학생들 중 "제가 만화가가 될 수 있을까요? 

미래가 있을까요?" 하고 불안해하며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화가 난다. 내 대답은 이렇다.
"왜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지? 네가 정말로 만화가 미치도록 좋은가, 그게 더 중요한 거야."



모두가 원하는 길에는 반드시 숨 막히는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취업과 인생의 고민을 상담하러 
교수실과 화실로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에게 위로 따위는 하지 않는다.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격려 따위도 하지 않는다.
네가 원하는 길은 따로 있을 거라는 무책임한 조언 따위도 하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만 묻는다. "될 거라는 '확신'이 있는가?"



만화가를 지망하는 젊은 친구들은 내게 수없이 묻는다.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리느냐고. 나는 이렇게 답한다.
"매일 10장의 크로키를 그려라. 1년이면 3,500장이다.
10년이면 3만 5,000장이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자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절대 3만 5,000장을 그리지 못한다.
1만 장쯤 그려서 평범한 만화가가 되거나 하루에 10장이나 겨우 그리다가 연필을 꺾는다.
확신이 없는 사람은 절대 노력하지 못한다.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열정을 다 소진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에게 밤샘 작업은 글자 그대로 고통일 뿐이다.
반면에 확신에 찬 사람들에게 밤샘 작업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들이 밤을 새자고 작정하는 게 아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 몰두하다 보니 날이 밝아오는 것이다.
고통을 즐기라고? 글쎄, 그게 가능할까?



진정한 몰입을 원한다면 사무실이든 독서실이든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감하게 치워야 한다.
"집중이 잘 안 됩니다"라는 불평은 많이 하지만 안 되는 이유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면 핑계에 불과하다. 최고의 취침을 위해서 침실의 조명을 어둡게 하고 
가급적 가전기기는 주변에 두지 않으며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최고의 성과를 위해서 자신이 가장 오래 있는 곳의 
환경을 정비하는 것은 몰입과 성장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만화도 그렇지만 모든 일은 지구력을 잃는 순간 힘들어진다.
딱 한 장이 아니라 1천 컷, 2천 컷, 수많은 컷을 그려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력이 없으면 무엇도 완성하지 못한 채 나가떨어진다.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은 젊은이 중 많은 이들이 

나중에 의외의 직업을 가지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역시 자신의 선택이다.



만화는 작가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이 스타일을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것만 해도 대단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만화를 재미있게 만든다는 것과는 다르다.
단순히 종이 위에 감탄할 만한 그림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듯 펄펄 뛰는 주인공과 독자가 몰입할 수밖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만화의 표현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멋진 아이디어의 발견이다.



마감 전날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디테일을 고치고 또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는 독자에게 지적을 받을 걱정보다는 
나 자신이 용납하지 못해서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만화는 보는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남들이 못 보고 지나친다고 해서 아무도 모를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지 않은가.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란 정말로 어렵다.
만화가는 몽상가적인 기질 즉, 세상의 정해진 틀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머릿속으로 계속하면서 지구력까지 갖춰야 한다.
창조적인 감성과 행동하는 이성이 모두 필요하다는 말이다.
온종일 공상만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를 부지런히 손을 놀려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작가들이 소심해진다는 것이다.
아주 대단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쪼잔해진다.
드라마 작가 중에는 한 회가 방영되고 난 뒤 반응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다음 회 스토리를 쓰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만화도 웹툰이라면 댓글이 올라오는 걸 안 볼 수는 없다.
댓글을 보다 보면 어쩐지 신경이 쓰인다.
만화가가 오롯하게 자기 소신에 따라서 그릴 때 만들어지는 것이 대작인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본인도 자기 확신이 점점 희미해진다.
대중이 작가를 컨트롤하고 작품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풍조에서는 명작이 나오기 힘들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만화는 처음부터 환상이다.
그저 작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계속해나가면 그뿐이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그림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의 힘도 필요하다.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재미있는 만화는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면 재미있는 이유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라면 일기가 소설보다 재미있을 리가 없다.
가족이나 친구의 일기를 훔쳐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안에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보다 더 공감 가는 이야기가 또 어디 있을까. 만화도 마찬가지다.
또래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작가 본인이 
가장 갈망하고 갈등하는 요소를 정직하게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울림을 준다.
제자들에게 일기 쓰기를 강조하는 이유도 "진실한 스토리"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토리만큼이나 중요한 만화가의 두 번째 역량은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는 말로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제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루에 한 걸음 더 걸으라는 것뿐이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지향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나는 어제보다는 잘 그리고 있어, 어제보다는 손마디의 디테일 하나가 더 좋아졌어, 
머리카락을 전보다 더 입체감 있게 부드럽게 그리는 새로운 방법을 알아냈어, 
그런 소소한 환희가 하나하나 모여서 좋은 만화를 그리는 바탕이 된다.



문하생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아야 한다.
그 점이 제일 힘들다. 문하생으로 있으면서 자기가 맡은 

그림만 그려도 돈이 나오기 때문에 안주하기가 쉽다.
대가가 될 소질이 있는데도 문하생에 만족하는 예도 있다.
너무 빨리 안정을 맛보아서 게을러진 것이다.
소나기가 무서운 게 아니라 보슬비에 옷이 젖는다는 속담처럼, 당장 생활이 편하니까 쉽게 멈추게 된다.
계속 연마하지 않으면 서서히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며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을 모른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자신의 현실을 발견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다.



삶에서 현실과 이상이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경우는 숱하게 많다.
그러나 사람은 한 가지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현실 속에서 어려운 길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이상을 향해 갈 것인가, 
형편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것인가.
그런데 세상이 또 재미있는 것이 어느 한쪽 방면을 선택하고 
충실하게 계속하면 결국 어느 시점에 두 가지 모두를 얻을 수도 있게 된다.
이상을 추구하다가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보상받는 예도 있고, 
반대로 대중과 호흡하면서 반 발짝 앞서 나가는 스텝 역시도 
꾸준히 유지할 수만 있다면 단순한 인기인을 넘어 대가로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현실과 이상,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을 부리며 
둘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는 어느 한쪽으로도 확실히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30대는 새롭게 자신을 무장할 시기다.
꿈을 가지고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던 사람들도 30대가 오면 한 번쯤은 달리기를 멈추게 된다.
이때 모든 것을 종합해 정리하고 스스로 삶의 커리큘럼을 다시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을 똑바로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현실을,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직시해야 한다.
위로의 말 따위도 기대하지 말라. 이제는 아프다고 울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모든 결과에 대해 온전하게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나이이다.
이제는 쓰러져도 누가 손잡고 일으켜주지 않는다.



만화를 그리는 30대 중에도 이상과 현실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일단 30대 정도 되면 자신이 천재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게 된다.
그리고 천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다행히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운명, 자기만의 길은 있다.
천재는 죽을 때까지 이상만 좇아서 살아도 된다.
천재가 아니라면 30대에는 이상과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더 이상 이상만 좇아도 안 되는 시기이고,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할 나이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호기심이 없고 세상 모든 일에 시큰둥한 사람에게서는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뉴스도 관심 없이 듣고 누군가 힘들게 찍은 다큐멘터리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만다.
자기하고는 당장 관련이 없으니 관심이 없다.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폭이 협소할 수밖에 없다.



그냥 "의사가 되겠다"가 아니라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가 되겠다"라는 꿈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는 삶의 목적이 직업에서 끝나버린다.
(중략) 삶의 목적이 직업에서 끝나는 사람이 자라서 사회의 중심이 되면 큰 문제가 된다.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기만 위하고 호의호식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그 자체로 목적이 

돼버리면 원하는 직업을 갖는 순간 삶은 더할 수 없이 허무해진다.



생각이나 관점이 변했다면 그 변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두려워하기보다는 솔직하게 "나 변했소"라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변했다는 말을 들을 게 무서워서 솔직하지 못하면 겉과 속이 어긋나서 오래가기가 힘들다.
가면을 쓰고 잠깐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몇 달, 몇 년, 한평생을 살기에는 너무 갑갑하지 않겠는가.



내가 말하는 인기는 아이돌 가수들이 받는 인기와는 다른 의미다.
조금 더 "베푸는 리더십"이자 "사람이 따르는" 조건을 말한다.
(중략) 지금 대중이 원하는 것은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다.
앞으로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세상의 존경을 받지 않으면 잘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한마디로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정보는 점점 오픈되고 사람들은 더욱 똑똑해져서 뭐든지 잘 찾아낸다.
예전처럼 가짜 이미지로 승부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혼자서도 잘 살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척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안 없는 힐링은 진통제와 같다. 통증을 잠깐 잊을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괴로움이 찾아온다.
그리고 상처는 점점 깊어진다. 힘들고 외롭다면 감정을 공유하고 고민을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그것 자체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자 자신감의 표현이고 또한 치유다.
그리고 의외로 내가 먼저 허문 마음의 문으로 상대가 

걸어 들어오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는 아주 즐거운 스킨십이다.



만화는 내 삶이었고 내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밤새 그림을 붙들고 그리고 또 그리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 나날들, 
그 속에서 나는 힘들기보다는 언제나 행복했다.
어떤 일이든 흥미가 있고 재미를 느낀다면 상당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
그 일에 재능이 있다면 더 높은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대가가 되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 높은 산봉우리 끝까지 올라가고야 말겠다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지만 정말 열심히 

전력투구하지는 못한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호감이 가고 관심이 가는 것을 넘어서 나는 이 일이 정말로 절실한가.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도 부족한 기분인가.
아니면 특별한 대안이 없어서 억지로 몰입하는 것인가.


- 책 본문에서 발췌 -


----------------------------------------------------------------------------

 

 

이 책은 2014년에 출판된 책으로 공포의 외인구단, 아마게돈, 

천국의 신화 등 수많은 만화 작품을 그렸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가 이현세 작가님의 자전적 에세이 책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우연히 발견한 책으로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흔한 자기계발서 느낌이 들어서 스쳐 지나갈 뻔 했으나 
뒤늦게 지은이가 이현세 님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급 관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는.

 

만화가가 쓴 자전적 에세이를 읽은 것은 과거 박재동, 이두호,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 이후 

네 번째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현세 작가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이현세 작가님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는 유치원생이었던지라

(당시 만화는 "둘리" 말고는 거의 모르던 시절) 작품을 접할 수가 없었고 

그 이후에도 다른 만화들을 읽느라 "공포의 외인구단" 외에는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본 것이 없었다.
(공포의 외인구단도 중학교~고등학교쯤 돼서야 읽었다는.;;;
이 외에 작가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아마게돈 애니메이션화, 
천국의 신화 논란으로 인한 법정 다툼 정도만 기억한다.)

 

이처럼 작가님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느낄 수 없었다.
이현세 작가님을 잘 모르거나 만화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만화가가 쓴 자전적 에세이 + 자기계발서 느낌의 책이기에 

만화와 만화가를 잘 모르시는 분들보다는 만화 그리기에 관심이 있거나 

만화가 지망생분들이 읽어보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었으나...
2022년 2월 현재는 책이 거의 절판된 상태라 구매해서 읽기가 쉬운 편은 아니므로 
중고 서적 또는 도서관에서 찾아 읽어보길 바란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