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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빌런은 자석의 양극이다. 서로 밀어내고 서로 끌어당긴다.

그들은 가장 멀리 있고 가장 가깝게 존재하며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은 빌런이라는 존재로 인해 약해지고 단련된다.

빌런은 주인공의 스승이고 어머니이며 아버지이다.

빌런은 사람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고 도덕이기도 하며 사회 구조이기도 하고 자연이기도 하다.

빌런의 정점에는 주적(主敵)이 들어앉아 있다.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라고도 말한다.

주적은 적대자, 즉 주인공의 행동, 사고, 움직임에 반하는 요소의 총칭이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 스토리 감상자들은 주인공에게만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다.

감상자들은 스포츠 캐스터가 되고 싶어 한다. 중립적인 시선으로 양편을 모두 바라보려고 한다.

그들은 작가보다 영리하고 평론가보다 분석적이며 학자보다 더 많은 오류를 찾아낸다.

그들은 주인공이 쉽게 이기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저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찾아온 악당이 아닌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 고통에 사로잡혀 지구를 멸망시켜버리려는 악당을 더 이해한다.

 

 

 

흔히 빌런을 설정할 때 "오직 절대 악"의 존재, "병리적 사이코패스" 같은 

원형적 인물로만 설계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래 나쁜 놈이니까, 태어나길 사이코패스로 태어났으니까"라는 

이유를 부여하면 주인공은 그 빌런을 평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주인공은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빌런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철학자 앞에서 장난감 칼을 들고 설치는 꼬마 아이와 다름없다.

빌런의 상처와 주인공의 상처를 테이블에 함께 펼쳐놓아야만 

둘은 동등하게 한바탕 놀아볼 수 있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비로소 빌런은 주인공을 가지고 놀 수 있으며 주인공 역시 빌런을 받아들일 수 있다.

 

 

 

스토리텔링에서 "빌런에게 상처가 있어야 한다"라는 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비단, 빌런의 악행에 관한 개연성을 살리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빌런과 동질성을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아픔을 깨닫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빌런이 주인공의 그런 아픔을 이용해서 완벽한 악을 저지르게 하기 위함이다.
매력적인 적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주인공과 빌런의 정서적 수준을 높이자.

그리고 서로 교감시키자. 빌런은 주인공과 동일해야 한다.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면 둘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치열한 대적자가 된다.

 

 

 

악당은 비겁해도 좋다. 변죽을 울리거나 쓸데없는 것에 집착해도 좋다.

그러나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자신의 원칙을 바꾸는 악당은 하급이다.

진정한 악당은 자신이 정한 원칙을 장엄하게 지켜야만 한다.

이런 악당은 주인공보다 더 철학적이다.

신념이 탑재된 악당은 신과 같으며, 주인공을 단번에 하수로 만들어버린다.

주인공은 그저 운과 발악으로 그를 상대할 수밖에 없다.

신념을 지닌 악당을 만들 수 있다면 주인공이 좀 유치하게 행동해도 스토리는 괜찮은 작품이 된다.

 

 

 

아이에게는 그 작은 몸을 편히 누이고 다독여줄 어른이 필요하다.

엄하게 가르치고 바로잡아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자신 뒤에는 든든한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이를 바로 서게 한다.

소설가 불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고독은 악마의 놀이터"라고 말했다.

절망의 고독자, 그것도 출중한 고독자는 악마에게 빠지기 쉽다.

악당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자신의 악을 막아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악당이 되는 것이다.

 

 

 

진짜 악당을 만들고자 한다면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정말로 믿는 이에게서 배신당하게 하라.

배신한 사람은 주인공이어야 한다. 주인공은 정의를 찾기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당을 배신한다.

주인공의 그런 행동으로 악당이 그림자를 보게 만들자.

 

 

 

작가는 2인자의 개인 역사를 만들 때는 그 어떤 빌런보다 심사숙고해야 하며 

그가 낮은 자리에서 웅크리는 동안 겪는 깊디깊은 고난을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 강력한 빌런이 만들어지며 그런 2인자 빌런 앞에 

마주 선 주인공의 서사도 덩달아 강력해진다.

우리는 2인자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간 콘텐츠 창작자들은 너무 주인공만 편애했다.

빌런이 왜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빌런이 왜 주인공을 시기하는지, 

빌런이 왜 그런 식의 악행을 저지르는지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선이 선으로서 인지되기 위해서는 악이 필요하다.

악을 겪어야 선을 이해한다. 악은 선을 인식시킨다.

주인공은 악당을 만나고 자신에게 그와 같은 나쁜 기운이 있음을 깨닫고 선을 추구하게 된다.

독을 먹고 독성을 기르는 것과 같다. 제독제로서 악은 주인공을 정화한다.

 

 

 

악당은 주인공이 진정한 영웅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빌런, 적대자, 주적, 악당 등으로 일컬어지는, 

주인공과 맞서는 요소는 주인공을 영웅으로 낳는 어머니와 같다.

주인공은 빌런이 잘 차려놓은 잔칫상에 앉아서 실컷 음식을 먹는 존재일 뿐이다.

주인공은 빌런이 구불구불 닦아 놓은 도로를 요리조리 달리는 운전자일 뿐이다.

주인공은 빌런이 차곡차곡 쌓아놓은 미로를 하나하나 탐색하는 탐험가일 뿐이다.

주인공은 빌런이 틀어주는 현란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희일 뿐이다.

주인공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와 열정뿐.

다른 것은 빌런이 다 갖춰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토리 창작자는 주인공보다 빌런을 더 사랑해야 한다.

창작자들은 그간 빌런을 너무 방치해왔다. 그래서 우리의 빌런들은 서럽고 처절하다.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이야기가 끝나면 무대 뒤편에 앉아 더운 가죽옷을 벗고 

홀로 땀을 닦고 있지만 누구도 다가와 시원한 물 한잔 건네지 않는다.

스토리 감상자들이 승리한 주인공에게 환호의 꽃다발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스토리 창작자들은 무대 뒤에서 녹초가 되어 앉아 있는 

빌런들에게 다가가 고맙다며 손을 내밀어야 한다.

스토리 창작자들이나 빌런 둘 다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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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 등장하는 빌런(villein 악당 또는 악역)에 대해 서술한 책으로서 

"빌런"이라는 단어의 유래부터 신념, 광기, 시스템, 양면성, 카리스마 등등 

빌런이 가진 17가지 다양한 특성을 소개하고 있다.

 

17가지 악당의 특성을 소개하면서 드라마,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작품들이 

예시로 등장하는데 예시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면 

책을 읽는데 조금 더 수월하겠지만 작품을 본 적이 없더라도 책을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읽기 쉽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토리 공부를 하는 입문자들도 읽기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예시로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보고, 읽고, 다 알려면 최소 몇 년 이상은 각오해야 할 듯.;;;

 

스토리 공부를 위해 읽게 된 책으로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악당(악역)의 역할, 

특성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거나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또 그동안 공부가 미흡했던 점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스토리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면 읽어보시길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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