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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징병제가 시행되면 이른바 젠더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평등이 저절로 실현되는 걸까?

여성 징병제를 하자고 하면 실행은 가능한 것일까? 여러 물음이 뒤따른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군대에서 누가 군인이 되느냐는 문제는 단선적인 기준으로 말할 수 없다.

그만큼 군대는 근대국가가 생성되면서 축적된 역사적·문화적 유물이자 정치적 아키텍처이다.

이념이 있고, 관습과 문화가 있으며, 복잡한 정치 역학이 얽혀 있다.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는 어떠한가.

안보 상황을 진단하고 군사 전략을 논하면서 

어떤 병역제도가 주효한 지 가늠하는 데 고려해야 할 조건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성 징병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물음과 논쟁이 요청된다.

 

 

 

여성이 군에 가면 무엇이 변할까?

여성 징병제가 시행되면 최소한 전쟁은 남성의 일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널 지켜줄게"라는 보호가 남성을 완성케 하는 남성성의 특성이자 역할로 독점될 수도 없을 것이다.

우선 군가를 모두 개사해야 할 판국이 도래한다.

한결같이 "멋진 사나이"를 외치는 그 집단적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나이라는 말 자체가 효용성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보호와 피보호의 경계가 젠더를 따라 뚜렷이 구별될 수 없고,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약한 여자로 더 이상 호명되지 않을 것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군대는 여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병사들의 여성화를 초래한다는 논리로 여성들의 군 진출을 반대하는 일부의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대전의 특성과 군 임무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와 편견의 소치일 뿐입니다.

 

 

 

군의 효율성은 여성들의 군 참여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고정된 원리가 아니다.

시대의 조건에 따라 구성되는 가치다.

여성이 군의 성격상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든 

동등하게 국가안보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되는 경우든, 

군 효율성의 진위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근대사회의 안보 통치와 

신자유주의 자기 경영 주체 사회가 어긋나면서 새는 파열음이다.

그 말에는 억울함, 보복, 성 대결, 성평등 등 여러 감정들과 주장들이 얽혀 있지만, 

각각의 것들이 태동한 맥락은 사라진 채 그 해법은 여성 징병제 제도화로 모인다.

그래서 여성 징병제는 실행되어야 할 시대적 과업으로 등극한다.

더욱이 여성 징병제는 성평등을 위해서라도 실현되어야 할 자명한 것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논란은 청년 정책의 부재를 고심 없이 쉽게 메꾸려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

사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변화한 젠더 지형을 노출한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개성 있는 인생을 설계하려 한다.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주조된 아내와 딸이 아닌 자신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만들어가는 삶을 추구한다.

전통적인 젠더 문법에 맞지 않는 여성들의 등장은 연애와 결혼, 직장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젠더 구도가 점차 달라지면서 군대를 전통적인 

성별 분업의 공간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비록 여성혐오가 촉발한 발화이지만, 젠더 지형이 달라진 세태를 반영한다.

 

 

 

여군들이 군대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는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여자 화장실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부대가 대부분이지만,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남군의 샤워실이나 화장실을 거쳐서 가야 하는 "생각 없는" 배치도 꽤 있다.

여성용 시설을 세우는 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되는 곳에는 

여군을 배치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던 만큼 여성의 군사 노동 조건은 열악하다.

이는 여군들이 다양한 장소와 업무에서 일할 기회가 제한되는 결과도 초래한다.

그뿐 아니라 일부 지휘관들이 여군의 전입을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골치 아픈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며 아예 이를 만들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12년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군 조직문화가 여군에 대해 비친화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조사 결과 중 하나가 지휘관이 남군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여군 응답자의 71.2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여군은 "봐주어야 할" 존재이다.

여기에는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 정책의 난제가 도사린다.

"다르지만 평등하게"라는 정책은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여성을 특별하거나 특혜받는 집단으로 만든다.

평등 정책이 남성 집단을 기준점으로 삼아 수립되기 때문이다.

 

 

남성 군인이 여성 군인과 함께 일하면 여성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남성 중심성이 약화하리라 예상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여성들과 일하는 경험이 쌓이면 편견은 약해지지만, 

이 약화가 젠더 구조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확장되지는 못한다.

편견의 약화는 개인의 생각에 머무는 것이다.

 

 

 

여성 징병 요구는 사회가 변화했다는 신호다.

근대 개발사회에서 구성된 젠더 역할이 신자유주의 자기 경영사회에서 어긋나고 있다는 징후이다.

남성만의 병역의무제가 젠더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은 아니다.

젠더 지형에 변화가 생긴 시대가 남성만의 병역의무제를 소환해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이다.

남성들 간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웅성거림이 이제 공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들에게로 향한다.

이 가운데 우리의 사회적 논의가 여성이 군대에 가느냐 마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논의로 수렴되어서는 곤란하다.

더 나은 논쟁의 방향은 "여성"이 군대에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군대"는 갈 만한 곳인가다.

젠더 갈등이 아니라 "군대"가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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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 징집을 둘러싸고 생긴 여러 가지 사회적 논란들부터 시작하여 

대략적인 대한민국 여군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 군대에서 

여군들이 어떠한 고충들을 겪고 있는지 등등 여성 징병제와 더불어 

대한민국 여군에 관한 고찰이 담긴 책이다.

 

과거 군 복무 시절 여군을 실제 눈으로 본 적은 딱 한 번(?) 정도밖에 없었고 
(훈련소에서는 본 적이 없었고 자대 또한 소규모 독립중대였기에 여군이 들어오지 않았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사단에 파견 갔을 때 한 번 본 것 같다.)
여성 징병제에 관한 내용도 과거 뉴스를 통해 아주 간간이 접했을 뿐 

여성 징병제와 여군에 관해 평소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관련 정보도 아예 없었다.
그래서 여성 징병제와 여군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을 한번 알아보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책 제목이 끌려서 읽게 된 책이지만.;;;)

 

대한민국 군대 내의 젠더 문제를 다룬 데다 책 저자 또한 페미니스트라서 
"페미니즘"에 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는 바가 전혀 없어도 읽는데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었다.

그래서 나름 유익하게 읽은 책이었다.

(책을 다 읽었지만 "여성 징병제"에 대해서는 찬반을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평소 남녀 불문하고 병사로서의 "입대"는 가급적 권유를 안 하는 편이긴 하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혐오하는 분이 아니시라면 한번 읽어봐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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