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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이 청춘만화의 주요 소재로 다루어지면서 

한국에서도 "고시엔=청춘"이라는 인식이 꽤 많이 퍼져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고시엔은 미숙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청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최고의 매력이다.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청춘이기에 어른들은 고시엔을 보며 지나가 버린 자신의 청춘을 회상하며, 

울어서는 안 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야구 소년들의 뜨거운 눈물을 통해 위로받으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신해철의 노래를 듣는 어른은 소년이고 신해철의 노래를 듣는 소년은 어른이듯이, 

고시엔을 보는 소년은 어른이고 여전히 고시엔을 사랑하는 어른은 소년이다.

 

 

 

청춘의 시기를 넘겨버린 어른들은 고시엔을 통해 자신의 청춘을 다시 느낄 수 있다.

분명 아웃될 수밖에 없는 타구에도 전력 질주하는 모습에선 

어른이 되어가면서 잃어버린 순수성을 떠올리게 된다.

경기에서 패한 뒤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는 자신의 실패 경험을 떠올리면서 같이 울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고시엔은 청춘으로 가는 시간여행이다.

 

 

 

어른들은 고시엔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야구 소년들은 고시엔을 통해 꿈을 꿀 수 있다.

이처럼 모두가 만족해하지만, 일부에선 야구 소년들이 

고시엔을 통해 과연 행복하기만 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고시엔이 감동의 드라마로 포장되면서 에이스 투수의 혹사부터 지나친 위계질서, 

야구부 매니저의 일방적인 희생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마치 갈라파고스처럼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그 때문에 급변하는 21세기에 대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일본 고교 야구는 세계 야구에서 볼 때 갈라파고스 같은 존재이다.

마치 수도승처럼 빡빡머리로 무장한 선수들이 

수많은 관중 앞에서 반발력이 높은 금속배트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일본 고교 야구 감독은 유니폼에 등번호가 없고, 전령이라는 구시대적인 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고시엔 인기가 여전하기에 세계 대회보다 고시엔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시엔은 갈라파고스 일본 사회에서도 더 특별한 무대이다.

 

 

 

일본 고교야구 관계자들은 한국 취재진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일본 고교야구는 교육의 일환"이라는 말로 일본 고교야구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고교야구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일본 야구가 학생야구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일본 학생야구에도 여러 가지 허점이 존재한다.

일본 학생야구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일본 고교야구로부터 배울 점이 많긴 하지만, 

일본 고교야구가 무결점의 완벽한 야구는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국내에서 일본 고시엔을 소비하는 방식 역시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엘리트 야구인들은 고교야구팀이 80개에 불과한 한국 야구가 고교야구팀이 4,000개에 가까운 

일본 야구와 대등한 실력을 보여준다며, 한국 엘리트 야구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역설한다.

반면 생활체육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일본 고교야구에서 합숙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선수가 수업 결손이라고는 전혀 없이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야구에만 전념하는 한국 고교야구는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심지어 야구 감독의 대부분을 영어 선생님과 수학 선생님이 맡고 있다는 아예 사실과 다른 주장까지 나올 정도이다.

이런 양측의 극단적인 견해는 모두 일본 고교야구의 한 단면만을 본 것이다.

일본 고교야구는 실내·외 전용 훈련장을 갖춘 가운데, 

한국 고교야구보다 더 많이 훈련하는 야구 명문 학교와 제대로 된 운동장도 없는 학교, 

심지어 야구부원이 9명이 채 되지 않아 여러 학교가 연합해서 

팀을 구성하는 학교까지 다양한 모습의 학교들이 공존한다.

고시엔을 두고 양극단의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보다 "고시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 인터넷에 떠도는 고시엔 관련 이야기는 전체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단편적인 정보가 대부분인데다, 각자의 필요에 맞게 왜곡된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나라에 고시엔을 주제로 한 책이 없다는 점도 잘못된 정보가 양산되는 데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고교야구는 야구선수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하는 것이라면, 

일본 고교야구는 고등학생이 야구를 하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은 야구 문화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한국 고교야구는 잘못되었고, 일본은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의 고등학교와 일본 고등학교의 발전 과정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고교야구의 현실을 편견 없이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학에서 한국 교육을 다룰 때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들이 21세기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고시엔 야구에 적용하면 "19세기의 야구장에서 

20세기의 관계자들이 이끄는 가운데 21세기의 선수들이 뛰고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위기에 직면한 지금, 일본의 역사와 함께했고, 

일본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고교야구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고시엔 대회의 주연은 야구선수들이다.

하지만 주연이 빛날 수 있는 것은 주연을 뒷받침하는 조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조연들이 고시엔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고, 고시엔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한, 

지금의 청춘과 과거의 청춘들이 여전히 고시엔이라는 이름을 사랑하는 한, 

고시엔의 이름은 계속해서 빛날 것이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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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6년 KBS에 입사하여 27년째(2023년 현재) 스포츠 기자로 활동 중이신 한성윤 님이 쓴 책으로서 

일본 고교야구 대회인 "선발 고등학교 야구대회(選抜高等学校野球大会)"와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全国高等学校野球選手権大会)", 

통칭 "고시엔(甲子園 / こうしえん / 갑자원) 대회"를 다룬 국내 최초의 야구 서적이다.

 

1부 청춘에의 동경, 영원히 꾸는 꿈 고시엔, 2부 아날로그 문화와 함께해온 고시엔의 역사, 

3부 매뉴얼 사회와 일본 야구의 전통 등등 총 10부로 나눠 고시엔 대회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고시엔 대회(일본 고교야구)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특징, 

고시엔 대회(일본 고교야구)의 문제점과 풀어야 할 숙제, 이렇게 나뉜다고 생각한다.

 

국내 최초의 고시엔 관련 서적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한 후 

호기심에 읽은 책인데 읽은 후 소감을 말하자면 일단 책이 이렇게 두꺼울지 몰랐다.;;;

마니아는 아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편인데 과거에 일본 만화의 영향과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던 

선동열, 이종범, 이승엽 선수로 인해 일본 야구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고시엔 대회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잡다하게 정보를 습득한 적이 있었는데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해 정보 습득에 한계가 생겨 많이(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이런 과거가 있었기에 기대를 하고 책을 읽어보려고 했으나 

예상보다 책이 두꺼웠기에 처음에는 책을 읽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책이 이토록 두꺼운 이유는 과거 tvN에서 방영했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생각날 정도로 고시엔에 관한 
여러 가지 잡다하고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3분1도 채 안 읽고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의 장단점도 위에서 언급한 알쓸신잡과 유사한데 유익한 내용들이 

아주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지만 잡학다식한 면을 갖추지 못한 채로 

책을 읽게 되면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함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단점으로는 앞서 언급했던 내용을 뒤에서 재차 언급하는 내용들이 

다수 있어 중복하여 읽는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p.223, 9번째 줄 일본 열도 4개 섬 언급에서 규슈섬이 빠진 실수가 있었다.
혼슈섬만 두 번 서술되어있었기에 2쇄 발행 때는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또 일본 고교야구의 일부 괴이한 특징들을 읽고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잡학다식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30대 중후반 이상의 독자라면 공감할만한 

내용들이 틈틈이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고시엔(일본 고교야구)"을 다룬 책이기에 일반적인 야구팬보다는 

"일본 야구 또는 일본 고교야구에 관심이 있는 야구팬"에게만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장하고 싶다.

(내가 권장한 독자가 아닌 다른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은 "알쓸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고시엔 잡학사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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